Shiny Sky Blue Star Pliés (F. Chopin Op.9 N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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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iés (F. Chopin Op.9 No.2)







Pliés (F. Chopin Op.9 No.2)


¶ Z·C
Z. N. W
C









01.


 F의 겨울은 유난히 길기로 유명했다. 기나긴 겨울의 끝이 다가올 때면, 드물게 봄날의 산들바람이 남부의 바다 내음을 이끌고 육지를 덮쳐오곤 했다. 신선하고도 배릿배릿한 그 냄새는 눈을 감으면 철썩이는 파도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질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서늘한 겨울이 한 발짝 물러났다는 걸, 사람들은 공기 내에 서린 희미한 염분으로 알아차렸다. 이런 따사로운 남풍이야말로, 추위를 꽤 타는 편이었던 C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달가운 소식이었다. 생의 마지막, 스러지는 순간마저도 바다에서 끝나길 바랐던 그였으니, 봄날의 축복처럼 코끝을 간질이는 소금기에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는 건 당연했다. C는 마차의 열린 창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반가운 향취에 자신이 애정하는 풍경을 머릿속에 선연히 떠올렸다. 햇귀가 새벽의 이슬을 물고서 솔랑솔랑 그려낸 물비늘이 금방이라도 눈앞에 펼쳐질 것만 같았다. 이런 까닭인지 C는 오늘 아침부터 기분이 아주 좋았다.

  마차가 붉은색 벽돌이 깔린 길을 내달리자 또각또각 맑은 말발굽 소리가 C와 Z의 나들이를 지겹지 않게 만들었다. 덜컹거리는 마차 옆에는 윈터에이지 가문의 문장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다. 붉은색과 검은색, 그리고 남색의 조화로 이루어진 마차의 외관은 꼭 그들에게 펼쳐질 앞으로의 신혼 생활을 기리듯 이른 오후의 햇볕을 먹어 화사하게 광채를 발했다. 차츰 새 망울이 오르기 시작하는 거리의 꽃나무조차도 싱그러운 빛을 띠어 한철의 기쁨을 만끽했다. C의 영롱한 은빛 눈동자가 빛을 먹어 한순간의 포말처럼 반짝였다.



   “뭐, F의 봄도 그리 나쁘지는 않네.”
   “내가 그랬잖아, 예쁘다고.”



 C의 F 칭찬에 Z은 자기도 모르게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C가 기분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Z 또한 덩달아 들뜨는 기분이었다. C는 창밖을 내다보던 시선을 제 앞의 인영에게로 찬찬히 넘겼다. 철강을 녹일 듯 강렬한 용암을 연상시키는 새빨간 머리카락이 오늘따라 영롱하게 느껴졌다. C는 입매 가득 장난스러운 미소를 품고서 그에 대꾸했다.



   “물론 A의 여름보다는 아니지만?”
   “내가 그럴 줄 알았다.”



 Z은 소리 내어 키득거렸다. 웃느라 잘게 주름이 진 살갗 위로 머리카락을 따라 짙게 음영이 졌다. C는 Z의 소성을 듣자면, 저 또한 자연스레 웃음이 났다. 사소한 행복이 또 다른 행복을 만들어 번져나가듯 노란빛의 햇살이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였다. 따스한 봄이 그들의 짓궂고도 장난기 넘치는 대화에 부드러운 숨결을 불어 넣었다. 일찍이 봄을 맞이한 들꽃이 지나가는 마차를 반기듯 살랑였다.






02.


 마차는 곧 상점가가 줄줄이 자리한 광장 한복판에 멈춰 섰다. 마차의 문을 벌컥 열고 내린 C의 넘실대는 푸른 머리카락이 굽이치는 파도처럼 드높은 창공을 드넓은 대양으로 변모시켰다. 오늘따라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한 날씨조차도 C와 Z의 데이트를 축복해주는 느낌이 들었다. 주위를 한 번에 둘러보기라도 할 것처럼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던 C는 마차를 돌아보며 해맑게 웃어 보였다. C의 뒤에서는 Z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비스듬히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뒤늦게 마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Z이 애써 문을 열어주려고 했지만, C가 냅다 차례를 뺏은 탓이었다. 이런 사소한 일에도 유치하게 구는 것이 지금이나 예나 다름이 없었다.



   “왜 이렇게 느려? 빨리 안내해주시지 그래.”
   “참 나. 먼저 내린 게 누구인데.”



 Z은 C의 장난기 가득한 말투에 맞받아치며 그를 이끌듯 선차에 발걸음을 옮겼다. C는 그런 Z의 옆에서 뭐가 어디에 있는 줄도 모르면서 그보다 한 걸음 앞서 나아갔다. 제일 먼저 C의 눈에 들어온 것은 길거리 노상 음식이었다. 이미 한 번 삶아낸 큼직한 양족발이 갈색의 달콤하고도 짭조름한 갈릭 양념으로 덧칠한 채 숯불에 구워지고 있었다. 매대 위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고기를 조우한 C는 그쪽으로 신경을 빼앗긴 듯 점차 걸음이 느려졌다. 옆에는 먹기 좋게 잘게 썰어둔 편육도 있었지만, C의 눈길을 뺏은 건 아무래도 입맛을 돋우는 양족발이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가는 일이 없는 것처럼, C는 자신의 옆에서 어디를 가면 좋을지 다른 곳을 보고 있는 Z의 손을 잡아 방금 제가 점찍어둔 노점으로 향했다.



   “처음은 아무래도 고기가 좋지 않겠어.”



 C는 독자적으로 답을 정해놓고서 작게 콧노래를 불렀다. Z이 자기 의견을 따라줄 걸 알기에 C는 당당했다. 물론 그가 따라주지 않더라도 C는 항상 당당할 테지만 말이다. Z은 앞으로 맛보게 될 고기 생각으로 신바람이 난 C가 마냥 귀엽게 느껴졌다. C의 이런 점들마저 좋아하게 되었으니 고백도 하고, 결혼도 하게 된 거겠지. 피식 웃음을 흘리는 Z의 황금빛 눈동자에 순연한 애정이 흘러났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Z의 귀걸이 장식도 앞뒤로 간닥거리며 밤하늘의 별처럼 반작였다. C는 그새 양손에 2개씩 양족발을 들고서 Z을 올려다보았다. 돈을 내는 건 데이트를 신청한 Z의 몫이었다. Z이 품에서 지갑을 꺼내어 가격을 지불할 때면 C는 포동포동하게 살이 오른 정강이 살을 한 입 베어 물어 오물거리고 있었다. Z이 C를 돌아보자 C는 자신이 이미 한 입 먹은 고기를 내밀었다. C의 입가에는 갈색의 투명한 양념이 잔뜩 묻어있었다. 그걸 본 Z은 호탕하게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아, 정말. 네가 애도 아니고.”



 Z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C의 입가에 묻은 소스를 닦아주었다. 소스가 묻어난 곳이 안쪽으로 향하도록 손수건을 반으로 접은 Z은 C가 내민 족발을 건네받으려고 손을 내밀었지만, C는 장난이라도 치듯 손을 재빠르게 뒤로 물렸다. 눈에는 장난기 가득한 이채가 은은한 광을 내고 있었다. 어쩐지 순순히 줄 의사는 없어 보였다. 아무래도 뭔가 바라는 바가 있는 모양이었다. Z은 그 의미를 가늠하듯 음?, 하는 의문 어린 소리를  내었다.



   “자, Z. 아 해봐. 내가 친히 먹여주도록 하지.”
   “이건 또 뭐냐. 그냥 줘.”
   “아, 입 벌리라니까.”



 이번에는 또 무슨 변덕인 건지. Z은 자신이 투명하게 비치는 C의 홍채를 잠시간 빤히 바라보다 결국 그에 응해주었다. Z이 입을 벌린 채 C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면, C는 마치 작은 복수라도 하듯 일부러 Z의 입가에 들고 있던 고기를 푹 눌러버렸다. 이내 때깔 좋은 다갈색 소스가 Z의 입가를 번지르르하게 만들었다. Z은 아무런 대답 없이 다시 고개를 느릿하게 들어 올렸다. 작은 한숨이 Z의 잇새로 흘러나왔다. C는 그 반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히죽거리다 곧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하하, 애도 아니고. 자기도 입에 다 묻히면서 먹네?”
   “누구 덕분에 그렇게 됐다.”



 Z은 퍽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치다 들고 있던 손수건으로 제 입가를 톡톡 닦아내었다. 그래도 나름 소스가 잘 배어들어 부드럽게 씹히는 게 길거리 음식치고는 그리 나쁘지 않은 맛이었다. C는 나름대로 소정의 목적은 달성했으니 순순히 Z에게 족발을 넘겨주었다. 고기를 애피타이저로 먹은 C가 다음으로 선정한 음식은 근처 빵집의 갓 나온 햄 샌드위치였다. 고기는 아무리 먹어도 옳으니까, 가 그 이유였다. 버터를 녹인 프라이팬에 식빵의 양면을 살짝 구워 햄과 양상추를 넣은 간단한 샌드위치였지만, 중간에 발린 새콤달콤한 소스 덕분인지 그마저도 C와 Z의 입맛에 꼭 맞았다. 그들은 빵집을 나오면서 버터가 반지르르하게 녹아 그 위에 파슬리를 뿌린 크루아상도 두어 개 사서 나왔다. 나름 Z이 추천하는 이 집의 베스트셀러였다. 포장해서 나온 햄 샌드위치를 먹으며 C는 길거리를 신기한 듯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포르메네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C에겐 아드리디스와 다른 풍경이 퍽 흥미롭기만 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다 보니 다른 골동품이나 사치품을 파는 매장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빈티지한 17세기 양식의 도자기부터 푸른색 원료로 정교한 그림을 그린 찻잔과 세련된 무늬를 뽐내는 질 좋은 양모 러그까지.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긴 행렬이 펼쳐져 있었다. Z과 C는 느긋하게 거리를 배회하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문득 꽃집 앞을 지나가던 C는 그 앞에서 잠시 멈추어 서더니, 매장 밖에 흐드러지게 진열된 화분과 꽃들에 시선을 두었다. 늦봄에나 필 꽃이 벌써 있는 걸 보아하니, 다른 지역에서 꽃을 들여온 모양이었다. C는 본디 해양업이 발달한 아드리디스 출신이라 식물에 대한 지식은 전무했다. 낭만적인 것에 재주가 없던 Z 또한 무지한 건 마찬가지인지라, C를 뒤따라 꽃집에 들어서긴 했지만 이렇다 할 지식을 뽐낼 수는 없었다.

 매장 내에는 저마다 각양각색의 빛깔로 단장하여 화려함을 자랑하는 꽃들이 잔뜩 널려 있었다. 유려한 곡선을 자랑하는 화병과 꽃다발에 쓸 수 있도록 가시를 제거한 꽃들이 물을 가득 머금은 채 향기로움을 뽐냈다. C는 그러한 꽃의 이름과 꽃말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지만, 보자마자 Z을 떠올릴 만한 꽃을 발견했다. C는 이번만은 자신이 계산하겠다는 듯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어 보이고선, 줄기에 달린 잎마저도 푸르러 싱싱하고도 강인한 생명력을 뽐내는 오클라호마 한 송이를 들었다. 점원은 꽃봉오리가 크고 활짝 만개한 장미의 줄기를 짧게 다듬어 C에게 건네었다. C는 그 꽃을 받아들곤 Z에게로 성큼 다가섰다. 옆에서 다른 꽃을 구경하며 아가판서스 한 송이를 뽑아 들던 Z이 C를 돌아보았다. C는 자신이 들고 있던 꽃을 조심스레 Z의 귓바퀴 뒤로 꽂아주었다. 자신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한 C가 만면에 가득 미소를 품었다.



   “누구 남편인지 인물도 훤하다니까.”



 Z은 제 귀 옆에 꽂힌 화순을 더듬었다. 평소답지 않게 달아오른 손끝에 여린 잎이 닿아 사그락사그락 소리가 났다. 단순히 손끝뿐만 아니라 얼굴까지도 열이 오른 기분이었다. 그의 시선이 일순간 흔들리나 싶더니 곧 C를 곧게 향했다. Z 옆으로 다가온 점원이 그의 손에 들린 꽃을 조용히 가져갔다. 신혼 아니랄까 봐, 마주한 둘의 시선에는 매장 내를 맴도는 풍성하고도 다채로운 향기보다 장난스럽고도 진한 감정이 물씬 느껴졌다. 혹여라도 다치지 않도록 끝을 둥글게 깎아낸 아가판서스를 받은 Z은 C의 넘실대는 머리카락 틈으로 꽃을 꽂아주었다. 사랑이란 감정은 여러 방면에서 사람을 변화시켰다. 꽃이라고는 일절 관심이 없던 둘에게 이런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심어주었으니 말이다. 어쩌면 그들의 집에도, 그들이 직접 고른 예쁜 화병 하나가 들어올지 모르겠다.



   “자기도…, 잘 어울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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