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y Sky Blue Star 夏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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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샘플

夏至

3,000자 | 오마카세로 진행한 여름 분위기의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

 


 

 

 

 

 

 

 

 

夏至

 

¶ R&R

R.F

R.H.Y

 

 

 

 

 

 

 6월 21일, 흔히 하지(夏至)라고 부르는 절기가 찾아왔다. 한해가 시작된 지 고작 몇 개월밖에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1년의 절반이 훌쩍 지나버린 셈이었다.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면 이글거리는 열기에 아스팔트 위로 희뿌연 아지랑이가 일었고, 에어컨을 켜지 않으면 제대로 된 사고를 하는 게 버거울 정도로 무더운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일기예보에서 예고하기로는, 올해 여름 역대 일본 최고 기온이 갱신될 거라고 했다. 이제 막 여름의 절정으로 돌입하는, 이름하여 초장인데 앞으로는 어떻게 버티라는 건지. H에겐 전혀 달갑지 않는 소식이었다. 적당히 더운 건 괜찮아도, 폭염을 좋아하는 사람은 좀처럼 드물지 않나? 체질에 따라 더위에 강할 수는 있어도…,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하지 않냐구. H는 뉴스를 보며 미간을 좁혔다. 창틈 사이로 솔솔 들어온 후덥지근한 열기에 H의 손에 들린 백색의 아이스크림 바는 이미 반쯤 녹아 있었다. H는 소파에 내려두었던 손을 들어 제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내었다.

 

 

“아……, 정말. 이러다간 쪄 죽고 말 거야.”

 

 

 H는 금세 축축해진 손을 제 반바지 위로 두어 번 문질러 닦아내었다. 하지만 바지 또한 땀 때문에 눅눅해진 터라 별다른 효용은 없었다. 오히려 역효과라면 역효과일까. 괜히 손도, 다리도 더 찝찝해진 기분이었다. H는 이를 만회하려는 듯 그 이후로도 다시 세 번 정도 제 바지 위로 소금기 어린 손을 비벼봤지만 역시나 헛수고였다. 지나친 더위는 사람의 사고를 둔하게 만들었다. 이성적인 판단을 요구하지 않는 일련의 행위 끝에, H은 결국 땀에 절은 손을 내버려두기로 했다. H는 제 허벅지 옆에 손을 힘없이 내려놓으며 소파에 등을 푹 묻어버렸다. 연갈색의 나무막대를 타고 흘러내리던 하얀색의 얇은 줄기가 그에 대한 반동 때문인지 H의 손톱에 닿기 일보 직전이었다. 가죽 소파마저도 습기를 잔뜩 먹은 탓에 찐득거리며 그의 드러난 팔에 달라붙고 있었다. H의 불쾌지수가 나날이 상승하고 있었다.

 

 그가 이렇게 날이 더운데도 불구하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아니라, 창문으로 솔솔 새어드는 심마바람에 몸을 맡겨야 하는 까닭은 단순했다. 하필 여름 초반까지만 해도 잘 버티던 에어컨이 갑자기 작동하지 않게 된 게 그 까닭이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에어컨을 오랜만에 가동했다가 고장이 났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가구가 여기뿐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H와 F는 급히 AS센터에 전화했지만, 에어컨 수리 기사는 지금 예약해도 앞으로 2~3일은 더 기다리셔야 할 거라는 말만 전해왔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기다리라면 기다려야지. H는 제 손가락을 타고 뚝뚝, 떨어지고 있는 아이스크림 방울에도 서둘러 반응하지 않았다. H는 묽은 방울이 새끼손가락까지 닿아 소파에 떨어지려나 싶을 때가 되어서야, 뒤늦게 다시 상체를 일으켜 앞에 놓인 사각 티슈를 뽑아 들었다. 닦아내도 끈적함은 가시지 않아 기분은 배로 나빠졌지만, H의 표정은 무표정에 가까웠다. 이제 화를 낼 힘도 없는 듯했다.

 

 

“H, 많이 덥지? 우리 카페나 갈까?”

 

 

 막 샤워를 마친 F가 덜 말린 머리를 닦아내며 H의 곁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시원한 물에 몸을 담근 것이 무색하게 F의 목을 타고 송골송골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오후 3시를 향하고 있는 시간이었다. 제일 더울 때이니만큼, 근처 카페에서 땀을 식히고 오기에는 딱 좋은 때였다. H는 소파 등받이에 기댄 채 고개를 젖혀 F를 올려다보았다. H의 시선 끝에 F의 물 먹은 머리카락이 비쳤다. 물에 젖어서인지 평소보다 색이 짙었다. H는 F의 탁한 금발을 지그시 응시했다. 그렇게 높다란 콧날을 스쳐 탄력 있는 피부를 타고 눈길이 스치면, H는 문득 자신이 너무 뚫어져라 F를 보고 있었던 건 아닌지 싶었다. F는 H의 시선이 아무렇지 않은 듯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작게 웃음을 흘렸다.

 

 

“왜 그렇게 봐. 나, 뭐 묻었어?”

 

 

 날 서지 않은 음성. 사랑한다는 말을 직접적으로 내뱉지 않아도 상대를 향한 애정이 듬뿍 느껴지는 잔잔하고도 듣기 좋은 중저음의 목소리. F는 질문에 대한 답을 알면서도 일부러 H를 놀리기 위해 묻는 거였다. H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너무 오랫동안 F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으면서도, 차마 눈을 돌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멍을 때리듯 F의 웃는 낯을 가만 응시하자면 소파 위로 F의 손이 올랐다. F는 제 팔을 H의 머리 옆에 걸쳐두고서는 이젠 거의 다 녹아내려 막대에 두른 휴지를 흠뻑 적신 아이스크림을 향해 눈짓을 보냈다. H는 그때야 아이스크림이 완전히 녹아내렸다는 걸 알아차렸다.

 

 

“아, 진짜……. 아이스크림 꺼낸 지 이제 3분도 안 지났단 말이야. 안 되겠어. 우리 빨리 카페 가자, F.”

 

 

 H는 황급히 상체를 일으키며 막대에 겨우 걸려있는 마지막 아이스크림의 잔해를 기울여 입에 담았다. 그로고선 티슈를 한 장 더 뽑아 막대를 완전히 감싸고자 했지만, 이미 끈적한 액체를 듬뿍 머금은 나무막대는 휴지 한 장으론 턱없이 부족했다. 막대기가 덩달아 젖어버린 휴지 중간을 찢고 빠져나왔다. H가 소파에 아이스크림을 흘리지 않도록 고군분투하고 있노라면, 그걸 뒤에서 지켜보던 F는 그마저 귀여운 듯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며 작게 숨을 흘렸다. 그는 곧 소파 등받이에 제 다리를 완전히 기댄 채 상체를 기울여 H의 손으로 팔을 뻗었다. 그러니까 자세히 말하자면, 이제는 진갈색이 되어버린 아이스크림 막대를 향해서 말이다. F는 H의 손을 찐득찐득하게 만든 장본인을 제 손으로 덮어버리고서 H의 손가락에 제 손끝을 얽어내었다. 자연스러운 스킨십이었다. 물 흐르듯 손가락 사이를 파고들어 부드럽게 살갗을 스치고 이내 H의 손에 들린 막대를 자신의 손아귀에 넣은 F는 H의 머리카락 위로 짧게 입을 맞추었다.

 

 

“이건 내가 치울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H, 찝찝할 텐데 샤워라도 가볍게 하고 나올래? 나는 먼저 준비하고 있을게.”

“……어, 응….”

 

 

 H는 순간 넋을 잃은 채, 그의 말에 띄엄띄엄 답했다. H는 F가 부엌을 향해 걸어가는 뒷모습을 느릿하게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그러니까…… 이게 전부 더위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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