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y Sky Blue Star 걱정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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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샘플

걱정에 대하여,

제야의 유망 타입 연성교환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걱정에 대하여,

E & Z

 

 

 

 

 인간들은 대대로 자기네들이 저지른 수많은 죄악에 대해 벌을 받고 있었다. 과거의 죄를 그 다음 세대가 대속하는 식의 강압적인 행태로 말이다. 수 세기를 걸쳐 이어진 징벌은 기어이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지만, 그들 스스로를 안타깝게 여기며 술에 빠져 사는 인간들을 제외하고선 오만한 영장을 불쌍하게 여길 타의 동정은 실로 전무했다. 대물림되는 저주는 조금씩 풀려가나 싶으면 더 섬세하게 꼬여가기 일쑤였다. 제법 차도를 보이나 싶었던 B-Z가 끝내 자멸하고, 인간들이 만들어낸 재앙이 지구를 검게 물들여 급변하는 자연에 적응하지 못한 생명체들은 항상 그러했듯이 멸종하기에 이르렀다.

 

 오늘날 종의 절멸을 알리는 시계의 시침이 정확히 인류를 가리켰다. 인간들은 자신들의 처지에 절망했지만 쉽게 희망을 끈을 놓지 않았다. 과연 이 병의 창궐지는 어디일지. 병원체가 존재한다면 이는 바이러스일지 혹은 박테리아일지. 그것도 아니면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진화에 진화를 거듭한 크리쳐들의 새로운 기습일지. 첫날 살아남은 이들은 저들끼리 연락망을 구축하여 서로가 알아낸 정보와 예측한 바를 주고받곤 했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세상이 수면에 잠겨 점차 고요를 되찾아가기 시작한 날로부터 2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인류는 집단적으로 일어나는 이 사태에 대해 마땅한 답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정부는 무너졌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병은 국가 운영의 주요임원들도 피해 갈 수 없었다. 남은 이들이 아무리 발버둥 쳐봐도 다음날이면 그들의 절반가량이 잠에서 깨어나지 못할 게 분명했다. 그보다 많든, 그보다 적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대로 가다가는 근시일 내에 인류의 씨가 마르리라는 사실이었다. 하나둘 꺼져가는 불빛 속에 어스름처럼 피어난 세상의 밤은 계절이 겨울로 다가올수록 짙어졌다. 제 3의 재앙 속에서 남은 이들은 광기에 찌들어 온갖 범죄를 저지르거나 차분히 자신의 남은 인생의 마지막 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E와 Z가 있는 네온시티는 다른 시티에 비해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일찍이 사라진 정부의 형태를 군이 대체했기 때문이었다. 수장이 죽으면, 그 수장을 대신할 보좌관을 여럿 두었고 그에 해당하는 여분의 인원 또한 차례차례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이 또한 들려오는 풍문일 뿐인지라, 크리쳐가 제대로 쳐들어온다면 이곳이 점령당하는 것도 시간 문제였다. 인구 부족 문제가 지금만큼 뚜렷했던 적이 없었으므로 우왕좌왕하는 이들의 마음을 한데 잡아줄 심리적 구심점이 필요했다. 그리고 아주 당연하게도 동요하는 시민들의 정신적인 기둥이 되어줄 이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군은 떠나고자 하는 이들을 막지 않았다. 그리고 들어오고자 하는 이들 또한 막지 않았다. 다른 곳으로 떠나야 한다며 짐을 챙기자 하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다들 말뿐이었다. 소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다른 네온시티로 간다고 한들, 가는 도중에 크리쳐에게 당해 개죽음 당할 위험성을 감당하기란 상당히 무모했다. 차라리 편안한 자기네들 집에서 그나마 남아있는 소중한 이들과 함께 맞는 죽음이 덜 비참하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즉, 갈 곳 없는 막막한 상황의 시답잖은 하소연이었다.

 

 E는 전화 너머로 들리는 감정 서린 음성과 어지러이 쏟아주는 재앙의 파동 속에서도 오히려 담담한 편이었다. 병에 대한 광기로 둘러싸인 세상에 만연해진 태도가 아닌, 어쩌면 순순히 이 사태를 받아들여 적응해버린 것에 가까웠다. 해결할 수 없으니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는 꽤나 합리적인 이유였다. 그리고 그 합리적인 이유에 맞게 제 자신의 마음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사람은 지극히 드물었다. E는 개중 제법 그럴듯해 보였지만, Z가 본 모든 날 중에 제일 인간다웠다.

 

 

“전 괜찮아요. 생필품도 충분하고….”

 

 

 Z는 연구실을 나와 E와 함께 지내며 E가 다른 이들에게 연락하는 횟수를 속으로 외고 있었다. E가 말하길, 인간관계는 마치 활물의 신경회로와 유사해서 저를 제외한 타인에게 관심을 두는 건 당연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자주 연락하는 건 통계에 부합하지 않았다. 그에 따라 E의 음성은 부쩍 떨림이 많아졌다. 본인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E를 매일 지켜보는 Z는 파악할 수 있었다. Z는 통화 내용을 듣고 싶지 않아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매번 얘기소리를 듣게 되었다. 오늘도 살아있다, 통화 내용은 대체로 생존 신고였다. Z는 인간이 얼마나 약한지 구태여 생각해보지 않아도 창밖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심히 줄어든 인파. 가끔 가다 소리를 지르며 뛰쳐나가는 사람. 눈물을 흘리며 길거리에 주저앉는 사람. Z는 지금처럼 E가 저를 보지 않을 때면 간혹 밖을 내다보았다.

 

 Z는 뿌연 창을 통해 하늘을 올려다본다. 오늘은 조용했다. 비명소리도 들리지 않고, 총을 쏘는 사람도 없고. E가 ‘지금 밖은 위험해, Z.’ 라고 말했던 첫날에 비하면 더없이 평화로웠다. 건조하고 삭막한 겨울바람이 북쪽에서 불어오는 계절이다. E와 눈사람을 만들 수 있는 계절. 온기가 새어나가지 않게 닫힌 창문 위로 서리가 잔뜩 꼈다. 후, 입김을 불면 강상이 더 짙어졌다 점차 맑아진다. 흐르게 번진 회색빛 창공에 점점이 구름이 떠다닌다. 청록색의 홍채가 딱 제 눈높이를 향한다. 제게서 등을 돌린 채 여전히 통화 중인 E의 뒷모습이 뿌연 시야에 담겼다. Z는 이 모습이 꼭 E와 자신이 처음 만난 실험실과 같다 느꼈다. 그러니까 유리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자신을 보지 않는 그때와 같이 말이다.

 

 E가 통화를 할 때면 방해하지 않는다. 서로 합의한 수칙이었다. E는 어제보다 더 많이 휴대폰을 쳐다보았다. 벌써 36번이다. 젖은 곳 하나 없는데 어딘가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Z는 이 감정을 가늠하려는 듯 창틀 위에 제 손을 내려 틈새로 솔솔 들어오는 한기를 더듬어본다. 형체가 없는 온도는 잡을 수 없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Z는 자신이 느끼는 이 감정이 질투의 일종이라는 걸 일찍이 배웠다. 그리고 E에게 이러한 사실을 말한 어젯밤, E는 자신이 느끼는 바를 Z에게 말해주었다. 걱정한다고. 그것은 마치 E가 실수로 물건을 떨어뜨려 다리에 멍이 들었을 때 제가 들었던 감정이 확대된 개념이라고 했다. Z는 걱정의 사전적 개념을 되새긴다. 안심이 되지 않아 속을 태운다. ‘그러면 E는 저도 그만큼 생각하고 있나요? 저도 그만큼 걱정해주고 있나요?’ Z의 쏟아져 내리는 질문세례에 E는 답을 망설였다. 평소보다 5초가량 늦게 음성을 내었고, 동공은 2mm 정도 확대되었다. Z는 그 미세한 차이를 통해 볼 수 있었다. E가 동요하고 있음을.

 

 기뻐해야 할까? Z는 E가 자신을 걱정한다는 실지가 못내 좋았다. 하지만 E의 눈빛을 보면 마냥 기뻐해서는 안 되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기쁘다고 표현하지 않았다. 이쯤 되면 Z는 현 상황을 색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다. 죽음이란 본디 생을 가진 모든 만물의 공평한 끝을 의미한다. 그게 지금 E랑 무슨 상관이지? 물론 죽음이란 항시 언제고 찾아올 수 있는 불가피한 일이다. 하지만 E가 인조인간인 자신을 걱정할 만큼 상황이 좋지 않은 거라면, 그만큼 E도 위험하다는 게 아닌가? Z는 문득 길거리의 사람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들의 행동거지는 마치 ‘슬픔’과 ‘괴로움’의 복합체와도 같았다. 누군가의 죽음에 보이는 행동양식은 사람마다 각자 다르기 마련이다. E도 누군가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겠지. … E도 그렇게 죽을 수 있다. 소우주처럼 끊긴 채 이어지는 사고는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이 죽음은 언젠가 E를 덮칠 것이고, 그것이 곧 머지않았다는 걸. Z는 기쁘지 않았다. E의 걱정이 Z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E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음을 인식한 Z는 창에 비친 E를 본다. E는 전화기를 내려놓은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여전히 등을 돈 채로 고개를 숙인 모습은 어딘가 기운이 없어 보였다. 드디어 전화를 끊었는데, E는 행복하지 않다. 기쁘지 않았다. 전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는데…. 기쁘지 않다.

 

 

“E. …무슨 일 있나요?”

 

 

 그리움. 두려움. 감정에도 냄새가 있다면 E에게서 꼭 그런 향이 풍겨 나올 것만 같았다. Z는 자신에게서 풍기는 감정에 비로소 걱정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E에게서 겨울 냄새가 났다. 작년에도 맡았던 섬유유연제의 향이 진하게 공기 중에 맴돌았다. 작년 이맘때에는 같이 눈을 맞이했는데, 올해는 집에서 나가지 못한다. Z는 E가 힘들 때에 해야 하는 방법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인간에게 안아준다는 행위는 서로의 심장을 가까이 마주함으로 안정감을 준다고 했다. 물론 꼭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Z는 E를 안아주고 싶었다. 순전히 주관적인 판단이었다.

 

 

“아니, 괜찮아.”

 

 

 저보다 작은 인영은 가끔 제게 거짓말을 하곤 했다. Z는 손을 내밀어 조심스레 E의 허리에 손을 얹어본다. E는 Z가 자신을 해치지 않으리라는 걸. 그는 고작해야 미숙한 어린아이에 불과하다는 걸 알고 있기에, 그의 서투른 애정표현을 내치지 않았다. 힘없이 휴대전화를 쥔 손이 툭, 허벅지에 닿았다. E는 서서히 고개를 들어 Z를 향해 반쯤 돌아본다. 음영 진 낯은 빛을 등져 Z는 의문에 잠긴다. 눈꼬리가 향하는 곳이 어디인지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E가 왜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신이 왜 거짓말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E가 하고 싶다면 감내할게요”

 

 

 언뜻 들으면 냉정한 듯한 Z의 말투에도 E는 그 안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감내할 테니 말하고 싶지 않으면 말하지 않아도 되지만, 자신이 걱정하고 있다는 건 알아달라는. 자신의 어깨 위로 얼굴을 묻은 Z의 숨결이 느껴졌다. E는 자꾸 그가 인간임을 상기하게 된다. 인간이 만든 피조물이라도, 이 재앙을 피하지 못한다면 Z는 정말 인간으로 죽는 걸까. 휩쓸리듯 나부끼는 무력감에 E는 제 눈동자를 속눈썹 아래로 감춰낸다. 제가 하고 있는 모든 생각들을 털어내었다.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내일은 부모님의 음성을 듣는 게 어려울 것 같다는 잡념도 말이다. 회피뿐인 번뇌에 E는 기어코 결단을 내린다. 그에게 제대로 된 이름을 붙여주기로. 제가 주는 마지막 선물로써.

 

 

Z.”

“… 오늘부터 네 이름은 L이야. 프로젝트 Z가 아니라.”

 

 

 그날도 하루는 온전히 끝을 향하고 있었다. 하루에도 삶이 있다면, 자정은 정확히 몇 시일까. 우리의 인생은 지금쯤 몇 시를 가리키고 있을까. 자정은 12시니까 12시라면, 나는 지금쯤 얼마나 와 있을까. E는 지금 몇 시에 도달했지? Z는 잠에 들고 싶지 않았다. 어딘가 불쾌한 낌새가 들었다. 아무래도 자정 이후의 시간은 영영 없는 듯했다. Z는 지금처럼 강렬한 확신을 가졌던 때를 회상한다. E를 사랑하고 있다는 확신. 포근한 이불에 몸을 맡기고서 E를 바라본다. 제게 주어진 방이 있어도, 오늘만큼은 한사코 같이 있어야겠다며 우겼던 덕이다. Z는 지나치게 조용한 자신의 옆자리를 바라본다. 천장은 암을 품어 거무스름하다. 성인 인간의 정상 호흡수는 12-20회/분. Z는 자신의 바로 옆에서 눈을 감은 채 잠을 청하고 있는 E의 호흡수를 재고 있었다. 오늘따라 일찍 잠자리에 든 E의 의도가 궁금했다. E가 한 거짓말과 연관이 있는 건 아닐지, 갑자기 제게 이름을 준 까닭은 무엇일지. Z는 의문을 가지면서도 알고 싶지 않았다. E를 닦달하고 싶지 않았다. 이유는 뻔했다.

 

 

“… E,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

 

 

Z는 그리 내뱉었다. 언제나와 같은 고백이라, 이상할 것도 없이 자연스러운. 그래서 마치 마지막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담백하고도 진솔한 말. Z는 E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에 잡히는 옷자락이 그대로 당겨져 온다. 따뜻한 온기. Z는 E의 온기를 사랑했다. 비록 자신의 말에 대답이 없어도 Z는 E가 자신의 말을 듣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Z는 옆으로 돌아누워 E의 첨예한 속눈썹을 물끄러미 응시한다. 무늬 하나 없는 플란넬 소재의 이불이 부드럽게 흘러내린다. Z가 입 밖으로 내지 않으면 깨지지 않을 적막이었다. E는 아무래도 침묵을 고수할 생각인 모양이었다. Z는 한동안 잠연히 익숙해진 어둠 속에서 E의 옆모습을 주시하고 있었다. 내린 눈꺼풀 아래 한 치의 미동도 없는 눈. 부드럽게 이어지는 콧대와 그 아래의 유려한 곡선을 띤 입술. Z는 제 손조차 잡아주지 않는 E를 보며 눈썹을 찡그린다.

 

 

“잠이 안 와요. 우리 조금만 더 있다가 자면 안 될까요?”

 

 

Z가 이쯤 말하면 E는 짧게라도 대꾸해주곤 했다. 시간이 늦었으니 자야 한다는 말이나,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한 번 들어는 줄 테니 말해보라는 재미없는 농담이나. 물론 Z는 그조차도 좋아했지만 말이다. 하여튼 Z는 오늘도 그런 답을 기대하고서 E의 잠든 모습을 뚫어져라 주시하고 있었다. 기이할 정도로 고요한 방. 지나치게 안정적인 숨소리. Z는 끌어온 옷자락 속, 새하얀 E의 손을 찾아 파고든다. E가 잡아주지 않으면 Z가 잡으면 되는 일이었다. 오늘 많이 피곤했던 걸까요? Z는 E가 완전히 곯아떨어져 버렸다고 판단했다. 한동안 집 밖에 나가지 않았지만, 그전까지만 해도 E는 이리저리 야근도 하고 바빴으니까. Z는 바빠서 자신과 함께 놀아주지 않는 며칠 전의 E를 떠올리며 자신을 다독였지만, 불안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이쯤 되면 E가 시끄러워서라도 깰 만했기 때문이다.

 

 

“E. … 벌써 잠들었나요?”

 

 

Z는 E의 손바닥을 타고 그보다 밑으로 제 손끝을 미끄러뜨린다. 세세한 주름이 진 인간의 손목. 검지와 중지가 E의 얇은 손목을 휘감고 거죽 아래의 맥박을 더듬는다. 일정한 규칙을 가진 리듬이 제 지문아래에서 뛰놀았다. E는 살아있다. 분명 그랬다. E는 살아있었다. 찝찝한 긴장감이 Z의 등줄기를 타고 신경을 갉아댄다. Z는 자신의 직감이 타 인간들보다 예리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곱게 자리한 이목구비를 따라 미간이 잔뜩 찌푸려진다.

 

 

“잠들지 말아요. …E.”

 

 

 Z는 천천히 제가 있던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가슴께까지 올려 덮었던 이불이 몸을 타고 아래로 떨어진다. Z는 E의 입술 위로 제 왼쪽 귀를 가져다 대었다. 인간보다 좋은 청력으로도 이상한 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E는 깊게 잠이 든 것뿐이다. 그래서 지금 내가 하는 말을 못 알아듣는 거라고. 그렇다면 조금만 더 E에게 자신과 같이 있어 달라고 할 걸. 아직 잠들기에는 시간이 너무 이르니까 영화를 보자고 해볼걸. Z는 E가 단순히 잠든 게 아니라는 걸 온 힘을 다해 부정하고 있었다. 쉽게 인정할 수 없었다. 도저히 E를 두고 홀로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사랑하는 이가 떠난다는 게 뭔지. E는 아직 생동하는데, 이런 게 죽음일 리가 없었다. Z는 흔들리는 시선을 갈무리하지도 못한 채 다시 제 몸을 E 옆에 누인다. 방금까지 그의 옆에서 시끄럽게 말을 걸어댄 주제에 E가 깰까 싶어 신후한 움직임이었다. Z는 시트 위로 흩날리듯 퍼진 E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더듬어본다.

 

 

“사랑해요…. 당신이 저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도.”

 

 

 Z는 자신이 어쨌든 인간의 일종이라고 생각했다. E가 걱정하는 것만큼 자신이 인간처럼 느껴져서 사실은 좋았다. Z는 만약 자신도 이 병에 걸릴 수 있게 된다면, E에게 꼭 말해주고 싶었다. 자신도 인간이라는 걸 증명해주고 싶었다. 그러면 E가 좋아해 줄 것 같았다. Z는 내일 일어나면, E에게 꼭 이 사실을 말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깊은 잠에 든 E의 허리를 제 품으로 끌어안았다. 제 안에, 그 여백보다 작게 들어차는 E의 어깨를. Z는 여전히 이 감정을 알 수 없었다. 태어나 처음 가져보는 아픔. Z는 이 아픔을 어떻게 해소해야하는지, E에게 묻고 싶었다. 어디가 아픈지 가늠할 수 없이 눈가가 저렸다. Z는 이를 세게 맞물린 채 입술을 꾹 다물었다. 안면근육이 경직이라도 된 듯 연신 꿈틀거렸다. 기뻐야 하는데, 기쁘지 않았다. Z는 E가 가진 음성의 떨림이 어떤 의미인지 깨달았다. 자신이 제일 알고 싶지 않았던 방법을 통해서.

 

 

“E…. 잘 자요.”

 

 

초동의 눈이 내리는 겨울밤. L는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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