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y Sky Blue Star 그 가을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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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샘플

그 가을의 바람

ㅇㄹ님과 청춘물 고정틀(현재 진행x)로 연성교환했습니다!

작업하는 동안 너무 즐거웠어요!! 감사합니다!! (^///^)


 

 

그 가을의 바람

A & S

 

 

 쌉쌀한 초콜릿을 그대로 담아낸 가을의 고소한 향. 어디선가 갓 볶은 원두향이 솔솔 피어올라 달콤한 밤나무의 방훈과 뒤섞였다. 얇은 모발 하나하나, 그 틈 사이로 스며드는 달짝지근한 계절은 S의 둥근 이마를 지나쳐 온화하게 미끄러져 내린다. 티 하나 없이 말간 피부 위로 연한 색소를 띤 입매를 따라, 그의 잔잔하고도 명랑한 허밍이 학교 벽면을 넓게 드리운 넝쿨을 타고 3층까지 성큼 올라선다. 창틀로 이어지는 갈색빛 담쟁이는 완연한 가을을 맞아 제 잎사귀 또한 누렇게 물들여 바람결에 나부낀다. 그 세세한 톱니 사이로 뛰놀던 부드러운 선율은 어느덧 창가에 기대어 따사로운 햇살을 만끽하던 A의 귓가로 다다른다.

 

 하늘빛 파스텔이 번진 창공은 입김을 불면 몇 없는 흰 구름마저도 날아갈 정도로 선선하고 맑은 날씨였다. A는 이 익숙한 음의 주인이 누구인지, 구태여 창밖을 내다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책상 위로 팔을 걸쳐둔 채 아이보리색 셔츠 위로 얼굴을 묻고 있던 A는 뺨을 간질이는 발간 일색에 내리감은 눈꺼풀을 두어 번 느릿하게 깜빡였다. 섬세하게 빛을 가르고 그림자를 뻗어내던 속눈썹 아래 옅은 자색의 홍채가 빛을 먹어 은은한 이채를 발했다. A는 가늘게 뜬 시선으로 미풍의 한숨을 느낀다. 창틀 너머로 고개를 내민 이파리를 잠연히 훑어 가을의 색채를 짧게 들이켰다. 그는 곧 가볍게 쥐던 주먹을 펼쳐 검지를 내었다. 톡톡, 책상 위를 두드리며 A는 창문 너머 저를 올려다보고 있을 S의 얼굴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오늘이 그날이었던가. A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새겨두고서 찬찬히 눈꺼풀을 내린다.

 

 S는 검붉은 타일들이 연달아 이어진 인도 위에 서서 책등을 손끝으로 쓸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자신의 등 뒤에 놓인 가로수의 나뭇잎이 넘실대며 솨아아- 소리를 낸다. 창 너머에 있을 누군가의 머리카락이 어째선지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대로 눈을 감으면 검은 시야에 아지랑이가 떠 눈두덩이 위를 따뜻하게 맴돌았다. S는 부드럽게 호선을 그리는 입매 위로 기분 좋은 소성을 흘린다. 오늘은 드디어 제가 참여했던 문학제에서 단편집을 출간하는 날이었다. 이번 문학제 참여 인원이 영 저조하다는 말을 선생님께 전해 듣고 저도 동참하겠다, 답했던 S는 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며칠간 A를 만나서도 문학제에 관한 얘기를 줄줄 늘어놓곤 했다. 그러니 A는 S가 얼마나 오늘은 고대해왔는지 알고 있었다. 그리 고군분투한 끝에 도착한 단편집에는 S, 자신이 쓴 짧은 동화도 수록되어 있었다. 이 책을 제일 처음 보여줄 곳은 선생님도 아닌, 바로 A였다. S는 그에게 보여주기 전 먼저 책 표지를 열어 볼 수도 있었으면서 주체할 수도 없이 두근거리는 가슴 탓에 표지만 연신 문지르며 이 시간을 기다려왔다. 역시 같이 보는 게 더 좋으니까. S는 제 위로 내리는 햇빛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눈을 떴다. 한껏 광채를 품은 서색(鼠色)의 눈동자가 아래로 휘는 눈매를 따라 일부분 가려졌다.

 

 

“A!”

 

 

 교실로 들어서는 S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노곤함에 반쯤 몸을 내맡기던 A를 일깨운다. 매 점심시간마다 저를 찾아오는 이의 다정한 음성. A는 찌뿌둥한 기분을 떨치려 너누룩이 상체를 세워 기지개를 켠다. 손깍지를 끼고서 앞으로 쭉 팔을 뻗어 등을 둥글게 말고는 한쪽 눈매를 찌푸린다. 그는 이어 허리를 곧게 피는가 싶더니 그대로 등받이에 기대어 S를 향해 나른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S의 손에 들린 하얀색 책등. A의 시선은 S의 손에서부터 상아색 셔츠, 갈색의 조끼. 그리고 가슴팍의 매달린 노란색 명찰로 나릿나릿 퍼진다. 이윽고 닿은 상기된 S의 두 뺨엔 저도 내심 들뜬다. 저와 함께 보기 위해 책을 받고 나서도 먼저 열어보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면 기특하고도 갸륵하지 않겠나.

 

 

“오늘은 좀 늦었네.”

 

 

 그리 말하면서도 마냥 짓궂지는 않은 점이 S는 좋았다. S는 A를 향해 걸음하며 책의 맨 겉장을 자랑스레 내보인다. 당장 표지에는 S의 이름이 적혀있지는 않았으나, 그조차 마음에 쏙 든다는 의미였다. A의 시야에 주홍색, 적갈색으로 물든 단풍나무 한 그루와 그 아래에 한 소년이 서 있는 삽도가 들어온다. 실루엣만을 암시하듯 경계가 뚜렷하지 않은 그림체 때문인지 삽화는 더욱 감성적인 면이 있었다. 어느덧 A의 옆자리까지 성큼 다가온 S는 의자를 뒤로 끌어 풀썩 앉더니 책상 위로 제가 가져온 서책을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아주 귀한 것을 다루는 마냥 모서리가 구겨지지 않게 새끼손가락부터 책상에 닿는 걸 보고 A는 작게 웃음을 흘린다. S는 그 웃음에 작게 불평하듯 푸스스 웃음을 띤 채 대꾸한다.

 

 

“제일 처음은 너랑 보고 싶어서, 먼저 열어보고 싶은 걸 참느라 힘들었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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