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y Sky Blue Star 초동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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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샘플

초동의 눈

ㅈㅇ님과 연성교환했습니다!

[ 그들의 제야 (고정틀) ] 타입으로 진행했습니다! 작업하는 동안 너무 즐거웠어요!


 

 

초동의 눈

 

 

 검은 안경테 너머로 부연 단숨결과 너울이 일었다. 자기 것이 아닌 외딴 나라의 국유지를, 이 넓은 공간을 홀로 점유한 듯한 기분은 어쩐지 기묘하기만 하다. 어지럽게 흩어진 모래알. 주위를 둘러보면 사람의 형태라곤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어느 누가 이런 계절에 유명지도 아닌 조그만 해변으로 떠나올까. 때아닌 피서지엔 유화물감으로 진득하게 덧칠해 얼룩진 구름이 번지고 있었다. 변격을 띤 물소리가 귓가에 잔잔히 울려 퍼진다. 이곳에선 내 숨결만이 유일한 규칙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난 그 사실에 저항하듯 이곳의 물결에 동화되어 하나의 변화를 더해본다.

 

 

“아무도 없네.”

 

 

 소심한 반항이었다. 내 말에 대답해줄 사람 하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의미 없는 말을 내뱉는 것도. 어느 누구에게 언질도 없이 홀로 여기까지 떠나온 것도. 첫눈이 올 날짜를 미리 찾아볼 정도로 묵혀둔 가슴 속의 미련이었다. 장장 세 시간은 더 걸린 거리를 향하면서 한 번도 내뱉지 않았던 목소리는 아무래도 잠긴 모양인지, 평소보다 낮은 톤으로 흘러나왔다. 뺨을 간질이는 사늘한 바람. 건조하고도 메마른 공기가 미량의 염분을 품고 코끝을 스친다. 물고기의 비늘로 수놓은 듯 새하얗기만 한 백사장 위로 일색이 겹겹이 선을 긋는다. 내디딘 발꿈치 아래, 으레 내가 서 있을 정도의 자리만큼만 모래가 패였다.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서면, 내가 찍어 남긴 그 흔적마저도 밀려오는 거품 속으로 알알이 사라진다. 욕심껏 번질 때는 제멋대로였다가 물러날 때는 저만치 달아나는 것이 꼭 누구와 닮지 않았는지. 후, 짧게 내뱉은 숨에 허연 입김이 뺨을 쓸며 올라선다. 쉼 없이 밀어닥쳤다 흩어지는 포말처럼, 내 마음도 그렇게 덧없는 거라면 이렇게 아프지는 않을 텐데. 뜻도 없이 이뤄지지 않을 상념을 속으로 되뇐다.

 

 나는 꼭 그때와 같이, 저 멀리 닿지 않는 선을 응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너를 보았던 때가 벌써 1년은 더 된 것 같은데…, 아니, 어쩌면 그보다 짧은 시간이었던가. 머릿속에 새겨진 수는 가끔 그 너머의 의미를 내포하지 못했다. 내가 널 그리워하던 그 수많은 생각들과 시간들을 단출한 몇 번의 획으로는 모두 담아내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일까? 수평선은 매번 건너다볼 적마다 한 폭으로는 담아낼 수 없을 정도로 광활해서 사실은 저 금도 수많은 파도로 이루어졌다는 게 차마 믿기지 않았다. 이것도 앞서 떠올린 것과 마찬가지로 이론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어도, 심원(深遠)적으로는 의미가 다른 까닭이었다. 그래서… 있잖아, S야. 내가 너에게 전달하지 못한 마음만큼 너도 내가 하나의 선으로만 보일까? 내 마음은 아무리 잔에 넘칠 만큼 넘실대도 네게 쉬이 닿지를 않는데…. 하지만 실로 당연한 일이었다. 말한 적 없으니 모르는 것도, 표현한 적 없으니 부지하단 것도.

 

 

“바보 같기는….”

 

 

 허탈한 웃음소리가 잇새를 스친다. 머리카락 위를 하나둘 물들이던 고요한 분말은 어느새 실체를 잃고 내게로 녹아들고 있었다. 소금기를 먹되 찝찝하지도, 그렇다고 그 끝이 뻐득뻐득하지도 않은 이질적인 설화. 어깨를 물들이는 이 눈송이가 바다로부터 여름을 앗아가고 있다. 여유도 습기도, 모두 빼앗긴 이 계절은 유독 무정하기만 하다. 한해의 첫눈이란 것도 이렇게 가슴이 시릴 정도로 매정할 수가 있구나. 하나둘 엉겨 붙어 꽃송이처럼 내리는 눈이 입꼬리에 닿았다. 스며드는 이 겨울을 품에 안고 속이 타들어 갈 정도로 깊게 한숨을 들이쉰다. 쉽게 무시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아리고도 탁한 냉점. 그 싸한 감각마저 포근하게 느껴진다면 분명 내가 이상한 거겠지. 나는 이 이중적인 시공간 속에서 너와의 추억을 한없이 곱씹게 된다. 그래서 난 아프면서도 평온하고, 울렁이듯 나부끼고 한 발 내디디면 삼켜질 듯이 부유하지만 내가 담은 시야만은 오롯이 고즈넉할 수 있었다. 그 속에서 나는 정온을 되찾으며, 동시에 아찔해진다. 그것이 내가 그리는 너의 모습이었다.

 

 애초에 너를 회상하고자 온 곳이었으니 어쩌면 마땅한 것이었다. 일부러 인파가 적은 곳으로 왔으니 지독스레 아득하기만 했다. 참으로 미련하기 짝이 없다. 지금이라도 너에게 연락을 보낸다면 무언가 달라지려나. 할 수 있었다면 진작 했을 거라는 걸 알고 있다. 그래도 늦었을 때가 제일 이르다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은 게 아닐까?

 

 

“아.”

 

 

 물길 속으로 들어갈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발볼 사이를 연신 좀먹던 조수가 모래알을 미끄러뜨려 구두 안을 파고들었다. 앞코가 완전히 젖어 바닷물이 양말 안까지 침범한 모양이었다. 수평선을 견주어 보던 시선이 뚝 아래로 떨어졌다. 검은색, 갈색의 구덩이 속으로 빠져드는 까마득한 기분이다. 발가락이 얼어붙을 정도로 추위가 매섭다. 아찔하게 하강하는 제트기처럼, 엔진에 이상이 생겨 추락하는 비행기처럼. 나도 곧 그렇게 저 아래로 곤두박질치려 하강곡선을 그리는 기의가 뇌리를 스친다. 차 안에 여분의 신발이 있었던가. 차분한 나는 이 상황에서도 돌아갈 여지를 두고 있다. 현실은 결국 이런 거니까. 때가 되면 나는 다시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운전대를 돌려야 하고, 나는 차에 따로 마련해둔 신발이 없으니 축축한 채로 집안에 들어서야만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수건이라도 가져오는 건데.

 

 솨아아-. 내 마음을 알긴 하는 건지 파도가 재차 들이닥친다. 분명 모르는 게 분명했다. 이렇게 시원한 소리를 내며 앞코를 적시는 유체가 발바닥까지도 집어삼키는 걸 보면 그랬다. 피식, 웃기지도 않으면서 싱겁게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마냥 둥글지도 않은 미소가 울퉁불퉁하다. 내 모습이…, 한심하지 않나. 그 날의 겨울은 이렇게까지 쌀쌀하지 않았는데.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그냥 사람이 조금이라도 있는 바닷가로 갈 걸 그랬나 보다 싶었다. 나의 후회가 모든 생각의 끄트머리를 물고 연신 따라붙었다.

 

 이미 물먹은 신발창을 벗어두어서 뭣 할까. 몇 차례 고민이 오갔다. 답할 사람도, 질문하는 이도 결국에 자신이었다. 그렇게 정한 마지막 선택은 아예 신을 벗어 모래사장 위에 얌전히 내려두자는 것이었다. 굳이 이유를 대자면 돌아갈 때를 염두에 두었다기 보다는, 어차피 젖은 거 이대로 편히 짐을 내려두고 싶은 것에 가까웠다. 몸을 숙이자 겹겹이 껴입은 옷감이 가볍게 접혀 뻣뻣한 주름을 만들었다. 손길 하나에 발목에 걸린 구두가 가볍게 떨춰졌다. 손을 뻗어 그것을 잡노라면, 다시금 밀려났던 물길이 이번엔 발목까지 들어찼다. 애써 벗은 신발이 성큼 앞으로 나아간다. 축축하게 젖은 회색의 천이 검게 물들었다. 아, 그래도 흰색 양말을 신지 않아서 다행이네. 짜증도 나지 않아 덤덤하게 그렇게 되뇌었다.

 

 신발이 저만치 떠밀려가기 전에는 얼른 건지는 게 낫겠지. 빠르게 나아가는 검은 양혜를 잡아채려 푹, 푹. 발을 삼켜대는 모래밭 속으로 깊게 들어선다. 발가락 틈으로 간질이듯 파고드는 유동적인 흐름이 채 걷지 않은 바짓단을 칙칙하게 물들인다. 어느덧 익숙해진 눈한에 발끝이 곱아든다. 심리적인 적응과 육체적인 적응 사이에는 아직 간격이 남아있었다. 살갗을 긁듯 퍼지는 시린 통감이 발바닥을 타고 정강이까지 몰려들었다. 단 아래로 기어든 모래 알알이 찝찝함을 남기고 피부 위에 들러붙었다. 결국 무릎까지 수심이 차올라서야 뒤축을 잡을 수 있었다. 번지르르한 가죽 끝이 물을 먹어 평상시보다 더 번들거리며 빛을 발한다. 주홍빛을 먹어 언뜻 감색처럼 보이는 색조가 윤슬을 맺는다. 물 먹은 밑창이 물결에 오르락내리락 무겁기만 하다. 뼈를 에는 추위도 나란히 자신과 어깨를 노니고 펼쳐진 전방의 감상에 진탕 젖어있노라면 이 적막한 소란스러움 가운데 이성도 흐려져 입술이 멋대로 음성을 내뱉었다.

 

 

“… 미안해.”

 

 

 화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담담한 나의 모습은 어쩐지 무정해 보이기도 하다. 그동안의 내 모습을 그리자면 자신은 그리 인정이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비록 네게 남긴 자신의 마지막 모습은 그 말 그대로, 무정했을지라도. 결국 내가 마음에 품은 이에게 남긴 흔적이 상처라면, 그 모습이 너무 초라해서. 자신은 더 이상 다정이라는 이름으로 남들을 대할 수가 없었다. 그때와 다른 이 모든 풍경들이 자신을 더 작게 만들어 아무리 겹쳐보려고 해도 같을 수가 없었다. 그야 자신의 곁에는 더 이상 그들이 남아있지 않으니까. 더 이상 네가 내 옆에 없으니까. 구름을 가르고 엇박자로 날갯짓하는 철새들의 무리를 응시한다. 뒤엉키는 난기류에 바다 냄새가 물씬 풍겨져온다. 아프리카 북부로 옮겨가는 이들의 뒷모습이 V자를 형성하여 제게서 멀어진다. 어깨를 짓누르는 가벼운 겨울의 무게. 아래로 기운 시선 끝에 어룽어룽 잠긴 신체가 비친다.

 

 

“멍하니 서서 뭐해?”

 

 

 넌 꼭 그런 말을 했었다. 지금 내 귓가에 들려오는 것만 같이 생생한 음성과 어조가 나의 시침을 되돌려 그날로 데려간다. 찰박이는 물소리. 차가울지언정 한증을 내어주진 않았으며, 서늘할지언정 외롭지 않았던 물비늘이 우리를 이끌던 곳. 연한 하늘색과 물결이 그대로 비치는 투명이 규칙적으로 엇물린 비치볼. 비닐 섬유가 가벼운 탄력을 띄어 통통 튀는 소리를 낸다. 조용할 틈이 없을 정도로 재잘거리는 이들의 틈 속에서 나는 바깥쪽에 서 있었다. 하늘과 경계 짓는 저 기다린 선을 응시하면서 온갖 색조들이 현란하게 뒤섞인 캔버스를 감상하고 있었다. 가까운 곳에 있던 너는 내게 말했다.

 

 

“너 그러다 공 맞는다.”

 

 

 가볍게 휘어지는 농담과도 같은 주의. 맑은 목소리가 퉁명스럽지 않게 안이 훤히 비치는 바닷물과도 같이 상쾌했다. 원시에 맺힌 시선이 네게로 흘렀다. 어두운 노란빛이 네가 품은 홍채보다 탁하게 일렁인다. 둥근 눈매가 레몬색의 밝은 햇발을 받아 쨍하게 얼룩져 나를 마주했다. 낮게 묶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려 고동빛이 그보다 밝아 보였다. 사람을 좋아한다는 건 그렇다. 별다른 걸 하지 않아도 자신을 향하는 그 모습만으로도 입가에 자연스레 미소가 떠올랐다. 내게 조심하라 말하는 너도 사실은 나를 보고 있었으면서. 내로남불 아닌지. 눈꼬리가 비뚜름하게 아래를 가리킨다.

 

 

“알았어.”

 

 

 꼭 네가 있어야 할 자리를 바라보면 그곳에는 어느덧 내리 앉은 어둠이 거뭇하게 피어올라 내 마음속에서 너라는 존재가 흐르는 것만 같았다. 고동색과 금색, 노란빛이 만연하게 흩날려 결국엔 검은색으로 귀결된다. 옅다 느꼈던 물가도 무릎께를 삼켜 허벅지까지 야금야금 먹어가기 시작했다. 그래, 이제는 돌아갈 시간이다. 보이지 않는 구멍을 메우듯 가슴께를 젖은 손으로 문지른다. 구두 한 짝을 손에 들고서 돌아선다. 자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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