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페어 연성교환 작업했습니다!
2000자 이내의 단문입니다. 감사합니다 :)
볕뉘
눈꺼풀 위로 아지랑이가 춤을 춘다. 살랑거리는 활엽수 사이로 불규칙적인 파편들이 너울대며 G와 C의 머리칼을 물들이고 있었다. 눈가를 간질이는 따사로운 햇발이 G의 속눈썹 아래로 성긴 그림자를 드리운다. 감은 눈 너머로 빛 알갱이가 점점이 일렁였다. G는 그 일렁임에 홀리듯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올린다. 반쯤 덮인 G의 시선이 난란한 빛을 먹어 공회전한다. 가무스름한 시야가 어느 정도 명랑한 오후의 햇살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서야 G는 그 끝에 맺힌 창살을 볼 수 있었다. 나뭇잎이 사락사락, 저들끼리 비벼대는 마찰음이 바람을 타고 뺨을 스친다. 이 선선하고 가냘픈 음에는 창가에 앉아 잠시 쉬어가는 새들의 지저귐도 함께하고 있었다. 코끝에 닿는 익숙한 내음. 맞닿은 이의 따스한 온기를 통해서 G는 제 머리가 기울어져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다.
“… 으음.”
닫힌 입술 안쪽에서 나직한 소리가 울린다. 곧게 뻗은 머리카락이 제 뺨 아래에 깔려 두피가 아프지 않을 정도로 당겼다. 정면을 향하던 눈동자가 아래를 향해 미끄러진다. 시선은 차차 구김이 적은 군청색의 바지로, 그리고 그 언저리에 가벼이 놓인 C의 손까지 자연스레 흘러내렸다. G는 이 몽롱함에 취해 제 시야각 모서리를 멀거니 내려다보았다. 잠시 이 다사로운 아늑함을 즐기던 가일은 문득 자신이 C의 어깨에 기대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평소와 크게 차이나지 않는 눈높이에 이 낯익은 향기까지. 모든 게 C를 가리키고 있었다. … 대체 언제 잠이 들었던 걸까. 잠들 정도로 피곤하지는 않았는데. G가 슬슬 몸을 일으키려 고개를 달싹이자 가까운 위쪽에서 친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C는 제 어깨에 실리던 힘이 조금씩 덜어질 때부터 그가 깨어났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처럼 자신에게 기대어 잠든 G를 보니, 조금만 더. 이대로 조금만 더 이렇게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짧지만은 않은 시간들을 공유하며 나눈 무언의 신뢰가 서로의 어깨에 놓인 짐을 돌볼 수 있을 정도로 견고했기에, 이렇듯 홀연히 잠든 이를 옆에서 볼 수 있는 건 어찌 보면 서로를 굳게 믿고 있다는 방증인 셈이었다.
G와 C는 별다른 말없이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때가 많았다. 그것은 동질감처럼 환경에서 비롯된 유사성뿐 아니라, 상대를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주려 매 언행마다 예를 갖추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난란한 빛이 내려앉아 잔잔하게 일렁이는 두 홍채가 엇갈릴 때면, 그 안에는 흔들림 없는 확신이 도사리고 있었다. 감정에도 여러 갈래가 있듯 애정을 명명하는 바도, 표현하는 방식도 다 다르기 마련.
C는 소파 등받이에 몸을 맡긴 채 G의 규칙적인 숨소리를 듣고 있었다. 서서히 졸음이 밀려왔다. 10cm가량 열어놓은 창문 사이로 바람이 솔솔 새어 들어와 옅게 초록빛이 도는 린넨 커튼이 나풀댄다. 시야가 가물가물. 얇은 천 너머로 부서지는 햇살을 담은 눈이 깜빡, 깜빡. 점차 움직임이 나릿나릿해진다. 마침 타이밍 좋게 흘러나온 가일의 침음과 어깨 위에서 느껴지는 나릿나릿한 기척에 금방이라도 C를 덮칠 것 같던 수마가 점차 걷히기 시작했다.
“군, 일어났는가?”
C는 눈을 느릿하게 끔뻑거리면서 가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서서히 몸을 일으킨 가일은 영 찌뿌둥한지 제 목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C는 그런 G의 보랏빛 눈동자를 가만 응시한다. 사선으로 쏟아지는 햇살이 그의 눈동자를 물들여 평소보다 색이 옅었다. 세세하게 그려진 홍채의 결을 하나하나 훑던 C의 시선이 그 옆에 생긴 미세한 자국을 들여다보았다. 아무래도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G의 관자놀이에 눌려 흔적을 남긴 모양이었다. C는 그 얄팍한 흔적을 잠시 빤히 바라보다 미세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G는 그런 C의 미소를 미처 눈치채지 못했는지 제 어깨를 주무르며 답했다.
“응, 깜빡 잠들었네.”
C는 저를 향하는 가일의 눈동자를 다시금 가만 마주한다. 입가에 자리한 미소 위로 창틈 너머 새어 나온 볕뉘가 걸렸다. C는 하마터면 저도 잠들 뻔했다고 말하려다 앞말은 삼켜내고 뒷말만 내뱉었다. … 오늘은 참 날씨가 좋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