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y Sky Blue Star 봄,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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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샘플

봄, 바다

ㄷㄱ님 1차 페어 연성교환했습니다.

1000자 이내의 단문으로 작업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

 


 

 

봄, 바다.

 

 

 봄이란 단어는 계절적인 의미를 지니어 상당히 시각적이다. 만개한 꽃봉오리가 여름이 주는 화려함과는 다르게 순수하고도 수수한 면이 있었다. 봄이 지니는 그 애매모호하며 무른 이미지는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을 숨겨둔 새싹처럼 짓궂기도 했다. 채 녹지 못한 살얼음을 발판으로 삼고 일찍이 꽃을 피우는 식물들은 한 계절의 순환을 알리는 시원한 바람에 고개를 치켜들었다. 이들이 찾아온 오후 2시의 바닷가에도 여린 봄이 산들바람을 타고 와 이슬에 녹은 염분을 머금고 첫 숨을 내뱉었다.

 

 그날의 햇살은 그늘 한 점 없는 세상을 물들이듯 풍성한 물결을 뽐내고 있었다. E의 레몬색 머리카락이 눈이 부실 정도로 빛을 머금었고, R은 손날을 제 눈썹 위에 비스듬히 올리고선 눈살을 찌푸렸다. 여느 바다가 그렇듯 R은 벌써 제 머리카락 끝이 뻐득뻐득해지는 게 느껴졌다. 평소 같았으면 무슨 말이라도 일찍이 던졌을 텐데 지금까지 아무런 말이 없는 E를 R은 곁눈질했다. 바다가 마음에 들었나 보지. R은 짧은 상념을 끝내고서 구태여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 나이대에만 느껴지는 향이 있다면 지금처럼 초봄의 꽃향기가 물씬 느껴지는 바다와도 같을 것이다. 그 끝에는 달큰한 코튼의 포근함이 느껴져 아직 어린 티를 벗어나지 못한 모습까지도 그와 같았다. 얇고도 섬세한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선선한 봄바람을 타고 흩날린다. 총기를 머금은 두 눈동자 위로 밝은 청록색의 파도가 흰색의 붓터치로 세세하게 그려져 반짝였다. 한랭한 공기가 그의 솜털 위를 간질였던 탓에 소년티를 벗지 못한 그의 뺨 위로 장밋빛 홍조가 떠올랐다. 한동안 자신의 앞에 수놓아진 수평선을 향해 시선을 내던지던 E는 고개를 돌려 제 옆에 선 R을 바라보았다.

 

 

   " R, R은 바다 본 적 있어요? "

 

   " 그 얘기만 벌써 5번째다. "

 

 

 시답지 않게 웃는 낯은 골라도 꼭 미운 말만 골라서 하는 재주가 있었다. 그래도 나 아니었으면 오늘 이런 풍경 봤겠어요? 내뱉은 숨마다 새어나오는 허연 입김이 지난 1년의 추억처럼 아스라이 콧날을 스쳤다. R은 그런 E를 흘겨보며 할 말을 참듯 한숨을 삼켰다. 데려와줘서 고맙다고 하지는 못할망정 생색이라니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마저도 딱 E다운 말이었다. 그건 그렇지. 16살의 푸릇푸릇함이란 그러했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R은 한창 인생의 봄을 걸어가고 있는 이에게서 시선을 거두며 짧게 수긍했다. 봄을 담은 하늘은 잔잔하게 구름을 옮기고, 그 아래의 수면 위로 E의 개구진 미소가 일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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