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y Sky Blue Star 새장 속 겨울
본문 바로가기

글 샘플

새장 속 겨울

ㅂㅁㅈ님 1차 자캐 페어로 진행된 연교 작업물입니다. 연성교환 감사드립니다! 

 

 

 


 

 

 

 

새장 속 겨울

 

 

 

 허리께를 넘나드는 밀색이 가히 가을을 맞이한 호밀밭처럼 바람을 타고서 줄렁였다. 그 풍성하고도 부드럽게 굽이치는 머릿결을 시선으로 쫓다 보면, 그 사이에 자리한 두 눈동자는 볼을 물들이는 탐스런 장밋빛이 보석 같이 세공된 두 잎사귀를 감싸 짙은 생명력이 온통 넘실대었다. 이런 그녀를 그 누가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세상은 본디 R을 귀애하기 위해 존재하는 게 분명했다. 곳곳에 자리한 형형색색의 꽃들이며, 그들의 잔향까지도 나무랄 데 없이 R이 고혹적인 존재임을 암시하고 있었다. R을 위해 세상이 자전한다면 삶과 죽음도 그가 관장해야 하는 게 옳기에, R을 섬기지 않는 자는 R에게 직접 절명을 선사 받게 됨을 영광으로 여겨야 하지 않겠나?

 

 이 모든 것이 마녀에겐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W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도, 그렇기에 W가 다른 이를 눈에 담는다면 그 눈알조차 자신이 가져야 하는 게 마땅했다. 쉽게 사그라들 생이라면 자신의 손바닥 안에서 천천히 바스러지며 바르작거리는 걸 지켜봐야지. 꼭 그 이름처럼 창백하고도 하얀 팔에 제 독소가 스며들고 있음을 되새길 때마다 R의 두 뺨이 발그스레해졌다. R의 순애란 이런 것이었다.

 

 

   “W.”

 

 

 가볍게 떨어진 입술을 타고 꼭 제 주인의 생기만큼이나 붉은 숨이 새어 나왔다. 벌어진 셔츠 아래 보얀 살결, 한들거리는 얇은 머리카락. 온통 백색의 보랏빛 카나리아. 그에게서 풍겨져 나오는 향기는 언제 맡아도 가지각색이었다. 어제는 분명 달콤한 머스크였는데, 오늘 만난 이는 아무래도 꽃향기를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R의 눈꼬리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몽롱하게 환상을 그리던 눈매에 햇살이 내려앉아 꽃잎이 한 장씩 떨어져 내렸다. 새장 안에 있을 때는 날개 하나쯤 불구가 되어도, 아니, 그렇게 되어야 하지 않을까.

 

 

   “R,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거야?”

 

 

 제게서 풍겨져 나오는 향도 제대로 갈무리하지 않는 하얗고도 멀끔한 얼굴. 그 날카로운 눈매에 담긴 눈동자가 다른 이를 향하는 건 쉽게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R은 천천히 제 왼손을 들어 올려 입가로 가져다 대었다. 윤기가 도는 윗입술 위에 가느다랗고 긴 중지가 내려앉아 엄지가 자연스레 R의 턱을 받치면, 정작 W는 R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다지 관심도 없으면서 고개를 기울이며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누구에게나 내어줄 그 첨예한 눈빛. 사람의 마음을 술렁이게 하는 쉬운 미소.

 

 

   “으음, 아무래도 곧 제가 바라던 순간이 실현될 것 같아서요.”

 

 

 R은 말끝을 늘리며 W의 미소에 화답하듯 웃음을 머금었다. 솔솔 창틈 사이로 새어드는 바람에 꽃잎이 하나 둘, W의 발치로 떨어져 내린다. R은 W의 내리깐 속눈썹을 가만 바라보았다.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내 앞에서 웃어주길 바라요, W.

 

 

 

 

 

'글 샘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초동의 눈  (0) 2022.11.08
祝福  (0) 2022.08.11
볕뉘  (0) 2022.07.29
봄, 바다  (0) 2022.07.29
霖雨  (0) 2022.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