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y Sky Blue Star 霖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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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샘플

霖雨

1차 자캐 페어로 진행한 연교 작업물입니다! 연성교환 감사드립니다!

 


 

 

 

霖雨

 

 

 

 등골을 축축하게 물들이는 먹색의 여름비는 눅눅하다 못해 징그럽기까지 했다. 며칠째 내리던 비에 가뜩이나 최저치를 찍은 D의 기분은 아예 땅바닥을 뚫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땀에 젖어 들러붙은 바지가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질척이는 소리를 내며 제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는데 말이다. 이놈의 비는 대체 언제 그치는 거야. 욕지거리와 함께 나지막이 내뱉은 말이 거센 빗줄기에 묻혔다. 제기랄, 이 개 같은 임무도 오늘 안에 끝낼 수 있었는데. 처음 이 장마가 단순히 소나기인 줄 알았던 날. 그날 시작했던 임무가 도통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어디를 그렇게 꼭꼭 숨은 건지, 적진임을 확신하고 들이닥친 게 대략 2시간 전. 보기 좋게 함정에 걸려든 D와 R는 며칠 동안 고군분투하던 임무를 곱게 접어 쓰레기통에 처박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R도 이번 임무를 망친 탓에 D만큼이나 심기가 불편했다. 그래도 졸개 하나를 거의 피떡으로 만들면서 얻은 정보 덕에 아예 말짱 도루묵은 아니니. 뭐, 이렇게 된 거 어쩌겠나. 다시 처음부터 해야지. R은 연신 구시렁거리는 D의 옆모습을 흘겨보며 입꼬리를 씨익 끌어올렸다. 진흙이 나뒹구는 진창길을 걷느라 어차피 있으나 마나 한 신발. 물먹어 반짝이는 금빛 귀걸이가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흔들흔들, 제빛을 발했다. 비에 쫄딱 젖은 주제에 눈빛 하나만큼은 금수를 집어삼킨 듯 흉흉한 이채를 띤 것도 제법 볼만 했다. D를 담은 R의 흰 눈동자가 칙칙하고도 탁한 물을 머금어 난란한 광채를 품었다. 되지도 않는 장난질이라도 치자는 심산이었다.

 

 어차피 젖기는 했지만 그래도 최대한 찝찝한 일은 피하는 게 그나마 낫지 않은가? 길목 중간중간 자리한 큰 물웅덩이만은 웬만하면 피해 가려던 D는 갑자기 제 허리를 껴안은 R에 인해 발 하나가 완전히 구정물 속에 빠져버렸다. 아마 숙소에 들어가 신발을 내던지면 발가락이며, 발목까지 진흙 천지일 게 분명했다.

 

 

   “야, 시발. 진짜… 뒤지고 싶냐.”

 

 

 D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뇌까리며 R을 돌아보았다. 빗발이 모로 나부껴 눈가를 세차게 때린다. 분노로 점철된 홍채 속 붉은 동공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R은 그런 D의 표정 따위 자신에게 위협조차 되지 않는 듯 한쪽 눈썹을 추켜올리며 웃었다. 그래봤자 D가 자신을 이기지 못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R이 고개를 왼쪽으로 기울이자 어깨에 눌어붙은 머리카락이 곡선을 그리며 미끄러진다.

 

 

   “키티, 이거 원. 감이 많이 떨어진 거 아냐?”

 

 

 R을 매섭게 노려보던 D가 빠득 이를 갈며 제 허리를 감싼 R의 팔을 밀쳐냈다. 하지만 R이 꿈쩍도 하지 않고서 더 달라붙어 대는 바람에 오히려 D가 힘에 밀려 뒤로 한 발짝 물러나고 말았다. 곧 철벅거리는 소리를 내며 R의 발도 물구덩이 속으로 들어섰다. 밀리지 않는 팔이야 하루 이틀도 아니었건만, D는 저 말이 뜻하는 바가 이번 임무와도 관련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사돈 남 말 하네. 지도 보기 좋게 당해놓고서는.”

 

 

 손아귀 하나 빠져나가지 못하는 게 말은 잘하지. R은 D의 서슬 퍼런 눈앞에 제 고개를 들이밀고는 입술을 달싹였다. 넌 정말 멍청하다니까. 매번 맞으면서도 또 이러지. … 키티, 사실은 맞는 게 좋은 거 아냐? R은 D의 어깨를 움켜쥐고서 D의 입술 위로 후, 제 숨을 뱉어내었다. 아래로 축 내려와 가려진 머리칼 틈 사이로 D의 눈빛이 한 차례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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