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y Sky Blue Star 창백, 그 미력한 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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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 그 미력한 온기.

장르 디스코 엘리시움 캐릭터 CP로 제야의 유망 5,000자 작업했습니다. - 2023. 03

 

 


 

 

 

 

 

 

 

 

창백, 그 미력한 온기

 

 

¶ Harrier Du Bois

¶ Kim Kitsuragi

 

 

 

 

 

 

 

 

 

 

01.

 

 존재의 반대 개념이란 불투명하여 오히려 삶을 무료하게 만들곤 했다. 형태 없이 넘실거린다고 한들 손을 뻗지 않으면 닿지 않는 담배 연기가 그런 존재와도 같다고, 해리 드 부아는 이 세계에 닥친 재앙을 그렇게 치부했다. 알코올 중독 특유의 주변 환경에 대해 무관심한 점이 두드러지는 그의 사고는, -다소 허황한 점에서 보아도- 의외로 다른 이들이 창백에 대해 회고했던 그 옛날의 관념과 퍽 유사했다. 그가 이제 와서 뒤늦게 술을 제대로 끊었든, 끊지 못해 아직 비우지 못한 술병 몇 개를 녹슨 서랍 속에 숨겨놨든 이러한 점이 그의 생각에 변화를 줄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못했다. 해리가 술을 끊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러한 일이 발발했으니 말이다. 오랫동안 마비되었던 그의 감각과 뇌는 몇몇 대두될만한 사건을 해결한 후에도 그의 육체를 여전히 굼뜨게 만들었다. 몇 년은 삭은 듯한 가루가 질질 흘러내리는 시가의 끝에 불을 붙이고 길게 숨을 내뱉으면 이내 희끗희끗한 시야가 점멸하고 마는 것처럼, 해리는 일부러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떴다.

 

 갈증은 때론 사람을 아둔하게 굴렸다. 해리가 손을 들어 제 턱을 긁어내자면 입술이 바짝 말라 그는 그조차도 불쾌하게 느꼈다. 도대체 갈라진 피부를 헤집는 것과 그나마 남은 수분마저 증발해버리는 것이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그는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마른침을 연신 삼켜보아도 해리의 갈라진 목을 축일 수는 없었다. 그가 귓불 뒷면에 숨겨진 뼈와 뼈 사이, 그 좁다란 틈을 아무리 눌러대어도 단 한순간을 축일 타액조차 입안에 고이지 않았다. 해리의 잇새로 작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런 곳에서 무게 잡겠다고 뒷짐 지고 서 있어 봤자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었다. 차라리 마른 목이라도 적실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좋았다. 해리는 자신의 서랍에 남겨두었던 위스키 반병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뽀얀 먼지가 병을 더럽히기는 해도 주둥이만 닦아낸다면 마시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도 없으리라. 해리는 자신의 방이 그리웠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그곳이 말이다.

 

 그는 곧 세상을 느리게 횡단하는 육지 거북과도 같은 눈으로 주변을 무감하게 돌아보았다. 귓등을 후려치는 소란스러움이 이질적이기보단 오히려 익숙했다. 궁지에 몰린 범죄자들이 심문 도중 버럭 소리를 지르는 강도(強度)와 비교하자면 더 분발해야 하는 정도의 소음이었다. 계속 듣다 보면 순간 막혀있던 부아가 밀어닥치는 것도 어떤 면에서는 범죄자들이나 불안에 잠긴 시민들이나 엇비슷했다. 해리는 목덜미를 감싸는 한기에 두 손을 파리처럼 비벼대었다. 급하게 가건물을 짓느라 보온에 신경 쓰지 못한 건설업자가 이곳 어딘가에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을 게 그의 눈에 선했다. 그도 이곳의 자영업자라면 한시가 빠듯한 와중에도 뒷돈은 빼돌려 먹었겠지. 해리는 얼굴도 모르는 이가 원래는 어떤 사람이었건 제 맘대로 재단하고서 깎아내리고 있었다. 자본주의가 깊숙이 자리한 레바숄답게 이곳에 모인 인원도 재력과 권력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라고 다를 게 없다는 뜻이었다. 성급한 일반화였지만, 그러지 않을 이유도 해리에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금융 산업의 중심지, 그 한복판이었으니 말이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해리가 목숨을 건졌냐고 묻는다면, 사실은 단순한 운이었다. 별다른 기우를 가질 것도 없이 원래 있어야 할 장소에 정체되어있던 창백이 돌연 이솔라로 밀려들 때, 그와 그의 동료 킴 키츠라기가 주둔하고 있었던 위치가 이미 죽어버린 이들에 비하면 퍽 좋은 쪽이었던 덕택이었다. 삽시간에 삶과 일상을 영위하던 터전이 줄어들자 사람들은 더 중앙으로, 더 중앙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이 페로몬에 반응하는 개미처럼 끝내 건물 중축을 위해 지었을 가건물로 몸을 던진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앞에 뛰어가던 사람이 들어가니 영문도 모를 흐름을 뒤따르는 군중의 자연스러운 심리였다. 패닉에 빠진 사람들은 그들을 보호해줄 정신의 지주로서 경찰이 필요했다. 경찰이 아니라면 정신력이 단단하여 무너지지 않을 그 누구라도 말이다. 겨우 생긴 마찰열로 목덜미를 덮어낸 해리가 문득 입을 열었다. 시가를 말아 입에 꽂아 넣지 않아도 허연 입김이 그의 콧대를 스치고 피어올랐다. 찬바람이 외벽을 그대로 통과하는 건물에 들어선지 어느덧 12시간이 넘어가는 때였다.

 

 

 

   “해리, 아무래도 말다툼이 심해지는 것 같은데 슬슬 말리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바깥 상황을 보고 온다던 킴이 어느덧 해리의 뒤로 다가와 말문을 텄다. 해리는 그의 말에 동조하는 게 좋을지 아니면 자신이 왜 가만히 있었는지를 변명해야 할지 조용히 머리를 굴렸다. 처음에는 해리, 그 또한 이런 돌발적 사태에 분개하며 당황해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의 마음속을 불편하게 하는 안도감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뭉개져 캄캄한 한편에서 득시글거렸다. 배리착지근한 감정은 그에게 진득한 죄책감을 안겨주었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인간적인 사람이었다. 인간적이라는 단어가 윤리적이라는 의미만을 내포한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오히려 비윤리적이더라도 이기적으로 구는 게 인간적이었다. 해리는 자신이 살았다는 생각과 그리고 킴, 그가 자신과 함께 이곳에 있다는 더러운 안도감에 입매가 비뚜름히 떨리는 걸 참아내야만 했다. 경직된 근육이 멋대로 날뛰려고 굴었다. 해리는 제 입매를 매만지며 킴 또한 저와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을지 궁금했지만, 그 호기심을 꾹꾹 눌러내었다.

 

 

 


 

 

 

02.

 

 해리는 제 머릿속을 떠도는 선택지 중 그나마 비겁한 선택지를 골랐다. 자신이 왜 진즉 그러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킴과 대화를 나누는 지금에 와서도 당장은 나서지 않을 거라는 의사를 함축한 문장이었다. 불안에 한없이 날뛰는 이들의 옆에서 어색한 위로를 건네며 곧 지원이 올 거라는 말 따위나, 다들 아무런 일이 없을 거라고 에두르는 건 해리, 자신과 궁지에 떠밀린 시민들을 다독이는 엉성한 자기 위로와 다름없었다. 자기가 가장 원하고 듣고 싶은 말을 남에게 하는 일처럼 말이다. 물론 하고자 한다면 하지 못할 것도 없었지만, 그런 거짓은 도리어 더 큰 후폭풍을 초래하리란 걸 모를 만큼 그는 멍청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웃긴 일도 없으면서 괜스레 헛웃음을 흘렸다. 거친 손으로 덮어내었던 목덜미가 뼈를 에는 한기에 싸늘해지고 있었다.

 

 

 

   “……너무 심해지기 전에만 말리면 되지 않을까 해서.”

 

 

 

 해리는 지금의 제 판단이 현명하지 않다는 걸 흐릿하게나마 인지하고 있었다. 두어 시간 전까지만 해도 우선은 다들 진정하자며 사람들 앞에 나섰던 것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태도였다. 뙤약볕을 한껏 머금은 모래알이 그렇듯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는 살갗을 빨갛게 만들 정도로 뜨겁게 달아오르지만, 해가 수평선 아래로 잠길 때면 이내 차갑게 식어버리고 만다. 해리는 자기 자신을 그런 모래에 비유했다. 어차피 얼마 되지 않아 죽을 텐데…, 북돋을 사기 따위 없었다. 다정한 말을 한다면 오히려 다른 이들이 아닌 자신의 앞에서 여전히 저를 바라보고 있는 킴에게 해주고 싶었다. 시야 끝에 걸린 킴의 시선은 너무 곧아 해리는 일부러 목을 가다듬으며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킴은 소리 내어 그를 책망하지 않았다. 손을 뻗어 그의 어깨 위로 제 존재를 가볍게 알렸을 뿐이었다. 해리는 소화해내지 못한 감정 때문인지 이어지는 공복 속에서 점차 위가 쓰라리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해리의 눈에 비치는 광경은 ‘너무 심해지지만 않으면’의 기준에 거의 간당간당하게 닿아있었다. 피부병에 걸려 숭숭히 털 빠진 쥐새끼가 골목마다 나돌아다니고 시커먼 벌레 떼들이 시도 때도 없이 귓가에 윙윙거리는 빈민 구역에 비하면 천국인 셈이었다. 거뭇하게 들러붙은 핏자국이 즐비한 사건 현장을 수도 없이 봐온 그로서는 고작 이 정도로는 둔감한 탓도 있었다. 그동안 관리하지 않았던 그의 몰골과 꼴을 비롯하여 그가 청결과 자기관리에 민감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고려하더라도…. 해리는 일부러 저만치 멀리 시선을 돌려버렸다. 킴이 자신의 이런 무책임한 언행을 나무랄지도 모른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킴은 완전하고도 확실한 죽음을 목전에 앞두고서도 덤덤했다. 내면은 어쩔지 몰라도, 해리가 보기에는 그랬다.

 

 해리는 킴의 검은 눈동자 위로 나릿하게 자신을 덧씌웠다. 앞으로 두 시간이 될지, 한 시간이 될지. 그도 아니면 하루가 될지도 모르는 죽음은 누구보다 착실하게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해리는 킴과의 마지막을 자세히 생각해두지 않았다. 하지만 여느 연인과 가족이 그러하듯, 아무도 없는 비밀스럽고도 조용한 곳에서 부드러운 말만을 담아 건네고 싶었다. 전자도 후자도 불가능한 경우였다. 애초에 그런 건 죽음을 앞두고서가 아니라 진즉에 했어야 하는 일이었다. 해리는 지금이라도 작금의 상황을 묻어두고서 어느 구석으로 가 둘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자신은 눈을 꾹 감고 그럴 수 있다고 쳐도, 킴은 그러지 않을 거라는 잘 알았다. 해리는 킴의 손등을 덮고서 천천히 아래로 내렸다. 미지근한 체온이 한겨울의 매정함을 머금고 있었다. 킴과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해리, 그래도 말이죠. 저는 이런 상황에서도 빛은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그 빛이 정확하게 저희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희망이 아니더라도 말입니다. 저희가 하지 않으면, 아무도 하지 않을 것처럼. 저 사람들에게는 아직 저희가 필요해요. 그리고…, 제게도 해리가 필요하고요.”

   “거참 비겁한 말인데…….”

 

 

 

 킴이 말하는 저희란 경찰의 정체성으로 확립된 개체들이었다. 그가 해리를 애써 타일러 자신이 생각하는 빛에 대해 추가적인 서술을 덧붙이지 않더라도 해리가 그의 말에 따르지 않을 가능성은 희박했다. 사람들은 창백이 이 얇은 벽의 틈을 꿰뚫고 스며드는 순간이 찾아올 때면 지금보다 더한 비명을 질러대며 종래엔 서로를 향해 칼날을 들이밀지도 모른다. 해리는 킴의 말에 그 미적지근한 손을 꽉 움켜쥐었다. 머리로는 그의 말을 이해해도 마음만은 좀처럼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킴에게도 해리가 필요하다는 말은 못내 답답하고 쓰라리기만 했던 그 어딘가의 체증을 내려주는 것 같았다. 자신이 그에게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증거처럼. 해리는 킴의 미지근한 체온에 동화되었다. 해리에게는 그의 곁을 떠나지 않을 소중하고도 두 번 없을 파트너로, 끝내 숨이 멎을 순간까지 함께할 짧은 순간의 동반자로 말이다. 해리와 킴은 무엇 하나 제대로 서로에게 표현하지 않았지만 이내 그것으로 만족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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