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y Sky Blue Star 死の境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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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샘플

死の境界 2

死の境界의 후편입니다. 즐거운 작업이었어요! 매번 감사드립니다!! >///<!!

 






死の境界 2



¶ FH
R.F
R.H






 계절로 치자면, 아직은 초봄으로 넘어가는 그 애매한 시기였기에 아무리 비가 쏟아져도 한여름의 장마보다는 거세지 않기 마련이었다. 그러니 일기예보에도 없던 비 소식에는 이 불미스러운 사건이 화재로 인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피어오르는 화마는 잠재워주겠구나, 그리 생각하는 이들도 몇 있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판단은 지극히 오산이었다. 새싹을 꽃피워줄 여우비인 줄 알았던 여린 물방울은 어느덧 제 부피를 키워 이제는 세찬 바람까지 동반하고 있었다. 장대비가 때 아닌 폭풍우를 모방하고 있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화창했던 하늘엔 폐수가 범람한 듯 검게 물들어 번들거리는 오일이 뭉쳐 저들끼리 흘러가는 것처럼 보였다. 빗줄이 모로 빗겨나가듯 사방으로 때려대는 통에 드문드문 뻥 뚫린 건물 안으로 물이 들어차고 있었다. 건물이 무너진 게 무슨 길조라고 토끼 눈을 하며 저만치에서 구경하던 이들도 서서히 우박과도 같은 물줄기를 피하려 자리를 파하고 있었다. 건물 근방에 있는 자들은 피해자 유가족들과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모인 공무원들뿐이었다. 시간은 어언간 늦은 오후를 향해가고 있었고, 두 발로 열심히 뛰어다니던 경찰 두어 명이 건물을 빙 둘러 조명을 세워두고 있었다. 여전히 소리를 질러대며 닦달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모든 게 말처럼 흘러가지는 않는다고. F가 R을 구하러 가겠다고 한지 어언 2시간이 경과한 후였다.




***

 



 날카로운 파편들이 이리저리 나부끼던 틈을 비집고 계단으로 내려온 R의 팔다리는 쉽게 말해 너덜너덜한 상태였다. 가벼운 찰과상에서 건물이 무너질 때 부딪혀 생긴 타박상까지. 멀쩡한 곳을 찾는 게 더 쉬웠다. 휴대폰이 깨져 생긴 미세한 유리가 지문을 따라 박혀있었지만, 그 상태로 땅을 짚고 여기까지 왔으니 얇은 상피세포를 꿰뚫어 더 깊숙이 박히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손바닥뿐만 아니라 하의에 가려 드러나지 않은 다리에도 작은 파편들이 박혀 피가 흐르고 있었기에, 그를 전부 소독하고 약을 바르기에는 터 없이 자원이 부족했다. 시간상으로도 차라리 급한 부위만 치료하고 나가는 게 옳았다. 드러난 외피만 어떻게 하고자 뺨에 생긴 상처 위로 밴드만 몇 개 붙이고 나면, F와 R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야만 했다. 오른팔을 F의 어깨 위로 어쭙잖게 두른 R은 뒤늦게 풀린 긴장 탓에 거의 F의 품에 안겨있다시피 했다. 구급함을 챙길 여력은 없었기에 F는 조심스레 한 발짝 계단 위로 올라서며 위를 올려다보았다. 비스듬히 열린 문은 자신이 지나가기에는 너무 좁아 보였다.

 평소의 백화점보다야 조용한 축에 속했지만, 그 대신 이질적인 소음들로 들어찬 장내는 불길하고도 어색했다. 둘 사이에 대화가 없는 간극마다 과묵한 진중함이 서려 있어 R은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그보다는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자신의 다리 때문에 신경질이 났다는 말이 옳았지만 말이다. F를 만나기 위해 비상구로 향할 때부터 제대로 움직이지 않던 사지에 슬몃슬몃 화가 나기 시작했던 R은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F를 만나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는 제법 근시안적인 시각으로 사태를 보고 있었다. 그러는 편이 희망을 가지고, 당장의 걱정을 덜어내기에는 쉬웠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고, 도리어 F와 함께 건물에 갇힌 지금에 와서 -당연 F에 대한 원망은 아니었지만- 부아가 끓어오르려 시동을 거는 건 궁지에 몰린 인간으로서 마땅했다. 그 화가 향할 곳이 자기밖에 없다는 사실과 더불어, 자신을 구하러 온 F는 아무 죄가 없으니 그에게 화를 내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겨우 버티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R이 지금껏 버텨준 것만 해도 여타 다른 일반인에 비해 오래 버틴 축이었다. 지금의 R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이성의 끈을 부여잡고서 고통이 들어찬 숨을 내쉬며 F에게 무게를 싣는 것밖에 없었다. 물론 이성적인 판단은 그러했지만, 찌푸린 미간이 쉽게 돌아올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런 R의 상태를 파악하기라도 한 듯, F는 앞으로 나아가던 시선을 R에게로 흘긋 돌렸다. 허리를 받치고 있던 손에 힘이 실렸지만, 그가 아프지 않게끔 적절히 조절하는 게 오늘따라 어려웠다. 저 문만 통과하고…, 여건이 된다면 차라리 업는 편이 낫겠어. 천장이 얼마나 무너졌는지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버틸 수 있는 기둥이 있다면, 아니 그냥 무게를 버틸 수 있는 철근만 있어도 충분히 내려보낼 수 있다. 불가피한 상황에 대비하여 세운 F의 예비책이었다. 냉정한 판단에 걸맞은 굳건한 표정은 불안이나 좌절이라곤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흔들림이 없었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욱신거리는 등은 여과 없이 자신의 부상 상태를 알리고 있었지만, 그런 것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R을 묶은 밧줄을 잡고 있을 때 힘이 풀리지만 않을 정도로 근육을 혹사하면 될 일이었다. 이런 일이야 산악소방관 못지않게 해봤으니, 물론 자랑은 아니었지만 이렇게라도 자신을 북돋아야 했다. 자랑이라고 해도 좋았다. 해낼 수만 있다면.

 R과 겨우 2층 비상구 문 앞까지 도착한 F는 고개를 숙여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직삼각형을 연상시키는 좁은 틈이었다. 구겨진 한쪽 문짝은 젖혀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나름 멀쩡한 문은 천장의 무게를 그대로 견뎌내고 있어서 문을 당기면 비상구 쪽이 완전히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F는 R을 지탱한 채 입술을 깨물었다. 그나마 무너지지 않은 벽면에 R을 잠시 기대게 해두고서 두꺼운 철문을 잡아본 F는 천장의 상태는 어떤지 확인하고 있었다. F는 그때야 자잘한 빗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비상구에 있을 때만 해도 듣지 못했던 미말(微末)에 가까운 소음이었다. 맞물린 각도로 인해 바깥 풍경이 시야에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그 기세가 약했다. 금방 그치려나. 아직 위층에는 구조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다. F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기분을 느끼며 제 헬멧을 벗어내었다. 아직 먼지가 뽀얗게 오르지 않은 F의 탁한 금발이 R의 시야를 간질였다. F는 아무런 말 없이 그저 묵묵하게 제 헬멧을 R에게 씌워주었다. 미세하게 벌어진 틈새로 R의 숨이 흘러나왔다. 마주한 둘의 시선은 무거운 감정을 엮어 오갔다.


   “F, 너는 어쩌려고…….”
   “F……. 너 지금….”


 겨우 숨만 내쉬고 있으면서, 이 와중에도 저를 걱정하는 게 바보 같았다. F는 제 낯에 일그러진 미소를 덧그렸다. R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이었다. 구겨지다 만 미간과 눈매에는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괴로움과 애틋함, 속상함이 죄 섞여 있었다. 다물린 입가는 결연하니 비뚜름한 미소가 새겨져 있어서…. R은 F와 똑바로 마주하던 시선을 모로 돌려버렸다. 이를 힘주어 물고는 눈가까지 차오른 감정을 억눌러내려고 했다. 이미 한계까지 차오르던 제 정신을 송두리째 조각내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자신이 F의 생각과 의도를 곡해하는 걸지도 모르지만 아무리 좋게 받아들이려고 해도 긍정적으로 생각이 되질 않았다. R의 붉게 열 오른 눈매를 따라 흰자가 분홍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F의 눈은 R을 구하다 여건이 좋지 않으면 죽을 것까지 결심한 사람의 눈동자였다. R은 F의 그런 시선을 견딜 수 없었다. 죽지 않을 거라고, 괜찮을 거라고 말해야지. 왜 그런 눈으로 비겁하게 바라보는 건데. R, 그 자신이 잘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아도 참지 못할 분노가 솟구쳤다.


   “나, 이런 거……, 필요 없어. 나 살릴 거면 너부터 해. 네가 살아야 나도 나갈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이런 거 해주지 말라고!”


 성대를 짓누르며 갈라져 나온 R의 목소리가 흉측하게 끝을 올리며 제 노여움을 토해냈다. 어느새 굵어진 빗줄기가 그 못지않게 흉흉한 소리를 내며 둘을 감싸고 있었다. 가슴이 오르내릴 듯 크게 내뱉는 숨이 R의 기도를 긁고 있었다. R의 악물린 이와 덩달아 크게 뜬 눈이 자신의 격정을 표하고 있었다. F가 처음 보는 R의 표정이었다. R이 이렇게 화를 내는 건 처음이었다. R은 손을 들어 유리조각이 박힌 손끝으로 헬멧을 풀어내려고 끝을 갉아내고 있었다. 반쯤 부서진 손톱 안은 이미 시퍼렇게 멍이 들어있었다. F는 R의 손등을 덮어내고서 눈을 꾹 감아내었다. 자신까지 울기라도 하면 상황이 더 엉망으로 치달을 것이 뻔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F는 차라리 빌고 싶었다. 그냥 자기 말 좀 들어달라고. 우리는 별 탈 없이 나갈 수 있을 거니까 자기 좀 믿어달라고 빌고 싶었다. 나름 근거 있는 자신감이었지만, R의 동요하는 모습을 보자 저까지 눈시울이 붉어질 것만 같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이 애정하고 사랑하는 연인이었으니 F는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F는 다시금 눈꺼풀을 들어 올려 제 푸른 눈동자를 비췄다.


   “……R아.”


 F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서 쉽사리 뒷말을 잇지 않자 R은 자신의 격양된 기분을 F에게 풀어내는 대신 애꿎은 제 입술만 연신 잘근대었다. 어디 할 말이 있으면 해보라는 뜻이었다. F가 자신에게 어떤 말을 해도 자신은 F를 두고 가지 않을 거라는 집념 혹은 의지와 확연한 불안이 R의 흔들리는 눈빛 속에 담겨있었다. 그래도 R은 혹시 F가 자신에게 자기를 두고 가라는 말을 할까 봐 겁이 났다. 물론, 조금만 생각한다면 이런 상황에서 F가 R더러 자기를 두고 가라고 할 상황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을 테지만 R은 그럴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R은 도저히 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침묵을 이겨낼 수가 없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저 입술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차라리 듣고 싶지 않았다. 벽에 기대고 있던 몸은 질질 끌리듯 앞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후들거리는 다리가 서 있다는 자체가 기적이었다. 언제 까무룩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지만, R은 헬멧의 끈을 잡던 손을 F에게로 뻗어 옷을 움켜잡았다.


   “난…….”
   “…듣기 싫어.”


 끝내 먼저 말을 꺼낸 건 R이었다. F의 망설임이 길어졌다기보다는 R이 그 찰나를 참지 못해 F의 말을 잘라먹었다는 쪽이 더 맞겠다. 실F F가 주어를 꺼내 말을 이으려고 할 때였으니, R이 그의 말을 끊은 셈이었다. 영 중심을 잡지 못하는 다리였지만, R은 자신의 마지막 힘을 다해 쓰러지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F는 처음에 벽에 기댄 것보다 많이 밀려난 R을 잡으며 R의 이름을 다시 애타게 불렀다. 짜증을 낼만도 했지만, F는 R에게 제 분풀이를 하고 싶지 않았다. 이토록 가슴이 답답한 이유는 R 때문이 아니라, R을 제대로 달래지 못하는 자신 때문이었다. 더구나 이 일의 시발점을 따지자면 당사자들은 R과 F, 저희가 아니었다. F는 어지러운 마음을 찬찬히 가다듬었다. 감정을 한 스푼 덜어낸 F가 염려와 R을 향한 자신의 순애만을 담아낸 채 재차 입을 열었다.


   “R아, 내 말 들어. 우리 같이 나갈 건데…, 너 이미 다쳤잖아. 그래서 그런 거야. 어차피 내 부하들도 곧 올 거고. 그러니까 괜한 생각하지 말고…. 우리 같이 나갈 거야. 알았지?”


 F가 아무리 자신을 가다듬었다고 해도 F의 문장 또한 그만큼 정돈되지는 않았다. 평소와 달리 서툴기만 한 타이름이었지만 R은 F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F의 말에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번 날뛰기 시작한 심장박동은 좀처럼 진정될 생각을 하지 않았고, 눈물 때문에 발갛게 느껴졌던 눈가의 열감이 이마를 타고 전신으로 퍼져나가는 기분이었다. R은 잡은 F의 옷자락을 놓지 않은 채로 길게 숨을 뱉어내었다. F는 옅게 미소를 지으며 엄지로 R의 하순을 부드럽게 눌렀다. 한참 깨물고 있던 여린 피부가 하얗게 물들었다가 이내 색을 되찾았다. R은 마른침을 삼키며 시선을 느릿하게 아래로 내렸다. 아까 F가 건네준 물로 목을 축였어도 화를 내고 나니 목이 다시 잠겨버렸다. R은 머리를 기울여 저와 가깝게 닿은 F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작게 기침을 하던 R은 불현듯이 아래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인형의 등에 걸어둔 줄이 끊긴 것처럼 멀어지는 의식에도 R은 F를 놓지 않은 채였다.


   “일어났을 때는 밖일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R아….”


 R은 제 귓가를 간질이는 F의 말을 들으며 까무룩 의식을 놓았다. F는 자신이 이 건물에 들어온 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감이 오질 않았다. 귓등을 때리는 빗소리가 늦어지고 있는 구조 시간을 책망하는 것만 같았다. 제게로 기대고 있는 R을 앉혀두고서, F는 반쯤 구겨진 문을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차라리 비상구가 좀 무너지더라도, R을 다시 안쪽으로 보내고 멀쩡한 쪽 문을 열어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된 이상 반쯤 구겨진 문을 열거나 3층으로 향하는 수밖에 없었다. 3층의 상황이 더 좋지 않다면 반대편으로 돌아 비상구를 2개나 더 통과해야 하니 운에 R과 자신의 운명을 맡기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F는 몸을 돌려 3층으로 향하는 비상구 쪽을 돌아보려다, 저를 잡고 있는 손에 옷이 당겨 고개를 숙였다. F는 여태 제 옷을 놓지 않은 R의 손을 감싸고서 그의 손가락을 하나씩 풀어내었다.


   “그래, 알았어. 위험한 짓 안 할게.”


 웃음기 서린 목소리가 쿡쿡, F의 입김을 따라 나왔다. 듣는 이 하나 없었지만 퍽 다정다감한 음성이었다. 끝이 들려 피를 내는 손톱이 부서지지 않게 풀어내는 F의 손에도 R의 혈흔이 묻어났다. 잊을 만하면 둔탁한 고통이 F의 견갑골을 따라 넓게 퍼지고 있었다. F는 무언가 굳게 다짐한 듯 비상구를 향해 접힌 문을 잡고 자신의 쪽으로 힘차게 당겼다. 천장의 파편이 후드득 떨어져 내리며 F의 머리를 더럽혔다. 새끼손가락 손톱만 한 돌덩이가 이따금 F의 위로 떨어졌지만, F는 그를 맞고도 문을 여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무언가 타들어 가는 소리와 다를 바 없었다. F는 짧게 기침을 했다. 분진이 날려 목이 따가웠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힘을 실어 문을 억지로 잡아당기면 철근이 휘는 느낌과 함께 근육이 찢어지는 느낌이 났지만 무게를 더 실어 제 쪽으로 당겨보았다. 부서진 옆 벽면이 천장을 지탱하고 있어 조각난 콘크리트가 먼지처럼 떨어지기는 해도 무너지지는 않았다.

 F는 성인 한 명의 힘으로는 감히 여는 게 쉽지도 않을 문을 제힘만으로 열겠다고 미친 짓을 하고 있었다. 바닥에 흰 선을 그리며 문이 움직이고 있었다. 구겨진 문은 펴지기보다는 부서지고 있다는 표현에 더 걸맞았다. 경첩이 부서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요철 없이 매끈한 철문은 잡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런 문을 어떻게든 잡겠다고 손톱을 세워댔으니 F의 손톱은 죄다 너덜거려 들린 것도 개중 있었다. F는 문을 당기며 경첩으로 시선을 두었다. 아니, 이럴 게 아니라. F는 거칠어진 숨을 기침과 함께 뱉어내고는 잡고 있던 문을 놔버렸다. 이내 상체가 휘청거리며 앞으로 기울었다. 이제는 저쪽을 차면 될 것 같은데…. F는 발을 들어 경첩 바로 옆을 향해 발길질을 해댔다. 계산된 생각의 흐름이기보다는 악과 어떻게든 나가겠다는 집념으로 점칠 된 행동과 사고였다. 몇 번의 발길질이 이어졌을까. F는 완전히 휘어버린 문을 보지도 않고서 R을 제 등에 업었다. 벌어진 문틈 사이로 내부가 훤히 보였다. 

 역시 뼈가 부서진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아플 리가 없었다. R의 체중까지 실리자 전보다 더 심해진 고통에 F는 뭐가 좋다고 키득거렸다. 한쪽 입꼬리를 올린 그가 밭은 숨을 내쉬며 안을 둘러보았다. 자기가 해낼 줄 알았다는 웃음이었다. 나가면 자신이 다쳤다고 혼낼 R의 생각을 하니 더 웃음이 났다. 하지만 그 기분은 오래 가지 않았다. 겨우 들어온 내부는 아니나 다를까 창문이 완파되어서 비가 그대로 들어오고 있었다.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뭉개진 고깃덩어리가 곳곳에 보였다. F는 그동안 많은 사체를 봐왔지만, 내부는 F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참혹했다. 비상구에서 재회했을 때 R의 상태가 괜찮아 보여서 내부도 상황이 나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방심했던 탓이었다. F는 R이 정신이 없어서 이 광경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F의 키들거리던 제 입매는 웃음기가 사라진 지 오래였다. F는 기울어진 타일 위로 물길을 그리는 걸 내려다보았다. 그대로 잠자코 창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거대한 잔해에 깔려 손만 겨우 삐져나온 시체에서 핏물이 퍼져 나와 F의 신발코를 적시고 있었다. F는 묵묵히 깨진 창문을 신발 밑창으로 치워내고는 미리 챙겨둔 로프를 꺼내 들었다.




***

 



 R은 눈을 떴다. 가물거리는 시야 속에서 점점이 검은 자국이 있는 천장이 보였다. 코를 찌르는 알코올 냄새. 귀를 울리게 하는 소음. 텁텁한 입안. 온몸을 덮치는 격통에 R은 급히 마른기침을 해댔다. 어안이 벙벙했다. 눈을 나릿하게 감았다 뜨고서 잘 보이지도 않는 시선을 굴려보면, 하얀색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바쁘게 돌아다니는 것이 언뜻 보였다. 그리고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누군가의 인영도. R은 그게 누구인지 인지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이곳이 안전한 곳임은 알 수 있었다. 왜 자신이 안전하지 못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지만. 적어도…. 어? R은 벌떡 상체를 일으키며 눈을 크게 떴다. 방금 전까지 F와 함께 건물에 갇혀있었는데. F는 어디에 있지? 혼란으로 가득 찬 눈동자가 허공을 연신 배회했다. 그때 R의 어깨에 익숙한 체향이 훅 다가왔다.


   “…내가 말했잖아. 우리 괜찮을 거라고.”


 익숙한 체향만큼이나 익숙한 음성이었다. R의 얼굴 위로 티 없이 말간 웃음이 피어났다. 갑작스레 반겨온 짙은 안도감이었다. R은 F에게로 고개를 돌리려고 했지만, F는 R이 자신을 보는 게 싫은 건지 R을 뒤에서 끌어안고서는 R의 어깨에 제 고개를 묻었다. 아마 지금 당장은 잔소리를 듣기보다는 이렇게 있고 싶었기 때문일 테다. R은 F가 왜 이렇게 하는 건지 영문을 몰랐지만, 당장은 조금만 더 이렇게 있고 싶어서 그저 웃어넘겨 버렸다. 어차피 함께 있을 거니까. R은 자신을 껴안은 F의 손등 위로 제 손을 겹치고서 답했다.


   “응…. 사랑해, 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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